사고의 기준을 제시하고 올바른 판단으로 이끌어 줄 ‘어른’의 가르침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각계에서 혹은 초야에서 혜안으로 세상을 관망하고 있는 어르신들을 찾아 가르침을 얻고자 한다. 우리 안에 올곧은 기준이 자리 잡길 기대한다.

지난 6개월여 진행됐던 ‘어른을 찾아서’코너가 이번 주를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동안 취재에 응해준 지역의 어른들과 성원해 준 군민들께 지면을 통해 감사 인사드립니다. <편집자 주>


▲ 박희오 옹은…

1932년 서면 장항마을 출생
성명초등학교 18회 졸업
화전농악기능보유자
농악연수회 지도강사
현 남해군화전농악보존회 고문

1992년 개천예술제 대상
1992년 경상남도민속예술경연대회 개인상
1997년 남해문화상
1999년 문화군민대상 수상
고집스럽게 전통을 계승하고 철두철미하게 우리 것을 지키며, 열정으로 한평생을 살아온 예능인을 그렸다.

황순원의 ‘독 짓는 늙은이’쯤이면 근사하리라.


화전농악전수자 박희오 옹을 그렇게 머리 속에 그려놓고 시작한 대화는 자주 난관에 부딪혔다.


드라마틱하고 결정적인 장면은 걸출한 작가의 창작물로 남겨두고 박 옹에게서는 지역의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살아있는 삶의 이야기를 전해들어야 했다.

화전농악과의 인연

화전농악은 남해군의 옛 별칭인 ‘화전’을 따 온 것에서 알 수 있듯 남해군에서 전해 내려오는 농악을 가리킨다.

좀더 전문적인 문헌을 살펴보면 경남지방의 진주 솟대당이패, 하동 복골사당패, 남해화방사 매구패 등 직업적인 연희집단 중 하나라고 설명돼 있다.


특히 남해의 화전농악은 민속농악으로 질굿, 거듭나기굿 등 그 경쾌한 가락은 남해의 특유한 가락으로 알려져 있다.


화전농악이 직업적인 성격을 띄었기는 하지만 박희오 옹은 처음부터 농악인으로 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때되면 동네에서 자연스럽게 열리던 풍물놀이였습니다. 동네 어르신이나 재주 있는 청년들이 마을 행사에서 신명을 풀면 그게 우리 동네 농악이었고,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어요”


동네의 풍습이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무렵, 별 저항 없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꽹과리를 잡은 것이 평생의 연이 됐다.


그러나 일제 치하에서 우리 전통 문화를 말살하려던 일본의 등쌀에 그 무렵 우리 장단은 소리를 죽여야 했다.

거기에 더해 전쟁물자 공출로 숟가락도 도둑맞았던 때였으니 꽹과리는 남아나질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일본 식민지가 종식되면서 갑갑하게 숨죽이고 있었던 우리네 신명이 터져 나왔을 터였다.


“왜놈들 등쌀이 좀 심했어야지. 채잰챈챈하고 귓등을 때리던 꽹과리를 다시 안 잡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연이 닿으려고 그랬는지 꼭 내가 안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란 말입니다. 그래 놀이 마당이 펼쳐질 때마다 스승 곁에서 계속 농악을 배웠지”


박 옹에게 전해진 화전 농악은 윗대의 한점식 옹으로 또 그 윗대의 한석동 옹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특히 한점식 옹은 남면 출신의 농악인이었지만 군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기막힌 솜씨를 자랑했었다고 박 옹은 회상했다.


스승이 리더격인 상쇠를 맡고 박 옹은 막내로 끝쇠를 잡아 남해군뿐 아니라 인근 지역에까지 화전농악이 울리게 했다.

아쉬움과 희망

박희오 옹에게 꽹과리의 한 대목을 부탁드렸다.


채를 집어든 박 옹은 이웃에 패 될까 두렵다며 조심스럽게 소리를 들려주었다.


서면 바다의 석양이 그의 꽹과리에 내려앉은 것부터 서러운 심사를 불러일으키더니 급기야 그 쇳소리에 사라져 가는 전통의 애환이 실리는 듯했다.


그러나 박 옹은 감상에 젖은 기자를 나무라듯 말한다.


“내겐 제자가 많습니다. 특히 훌륭한 실력자들도 나오고. 문화원 풍물교실을 지도하고 있는데 주부들의 관심도 대단합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우리 소리가 풀어내는 신명을 거부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겁니다”


아쉬움과 애환을 취재하려 했던 기자에게 박 옹은 희망을 말했다.


개인의 역량으로 전통의 혼이 이어지는가 하면, 윗대의 어른들로부터 명맥을 이어 자연스럽게 후대로 전해지는 전통도 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누구든 우리 고장의 소리, 화전농악을 전수 받을 수 있으니 행운이라면 큰 행운이리라.


화전농악뿐이겠는가.

어르신들에게 전수 받을 소중한 우리 것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

결국 세대간 소통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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