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기준을 제시하고 올바른 판단으로 이끌어 줄 ‘어른’의 가르침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각계에서 혹은 초야에서 혜안으로 세상을 관망하고 있는 어르신들을 찾아 가르침을 얻고자 한다. 우리 안에 올곧은 기준이 자리 잡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 장세진 옹은…

1927년 창선면 상신마을 출생
창선초등학교 19회 졸업
1948년 창선면사무소 총무계장
1980년 창선라이온스 회장
현재 창선면지편찬위원장
방안 곳곳에 메케한 담배 연기 진이 박힌 듯했다.

커서가 깜빡이는 컴퓨터 모니터가 다시 그를 재촉하는지 또 연신 담배에 불을 댕기며, 한켠에 수북한 자료를 뒤적이고 있었더랬다.

그는 이 작업을 가리켜 ‘지랄병’이라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장세진 옹, 그는 지금 흩어져 희미해지던 창선면의 역사를 되찾고 다시 기록하는 일에 여념이 없다.


서럽지만 위대한 창선의 역사

올해는 창선면이 진주목에서 남해군으로 편입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못말리는 지역주의는 창선 주민들이 남해군민으로서의 소속감을 채 갖기도 전에 기승을 부려 남해와 창선 간에 묘한 지역감정을 생산하고 말았다.

창선주민들을 제외한 남해군민은 창선의 역사와 지역 발전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있는가, 장 옹은 되묻는다.

“서운하지. 내 고장의 구구절절한 역사는 다 어디가고 ‘창선의 연혁’하고 내 놓는 걸 보면 100년 전, 진주에서 떨어져 남해에 붙었다는 거 말고는 없더란 말입니다”

그가 두 팔을 걷어붙이고 면지 편찬에 매달리는 진짜 이유였다.

우리가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의 동북공정 정책 따위에 내주어서는 안 될 이유는, 우리 한민족의 뿌리가 고구려와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같은 나라 안에서 역사와 전통을 나누어 지역주의를 논하는 것은 지나치게 소심한 관점이라 하더라도 창선면의 역사는 분명 남해군민이 공유하고 안아 가야할 우리 지역의 역사임이 분명하다.

100년사를 함께 했고 그를 토대로 앞으로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에서만 서자 취급을 받는 게 아닙니다. 창선의 발전 가능성과 필요에 대해 당국자들이 얼마나 애정 어린 관심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장 옹의 이같은 지적은 창선과 남해가 ‘하나’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독학으로 일군 삶

장 옹의 선친은 초등학교 교사였다. 역사의 격변기 속에 유년을 보내야 했던 장 옹에게 선친은 고등 교육으로의 진학을 반대했다 한다.

그러나 책을 읽고 연구하는 것이 적성에 맞았던 장 옹은 일본 와세다대학의 강의록을 구해 독학을 했다.

“책 둘러메고 뒷산에 올라 공부를 하곤 했습니다. 그 시절엔 독학이 오히려 제대로 공부에 몰두할 수 있는 방편이었어요. 할아버님은 내가 책만 펴고 앉아있으면 꼴 베 오란 말 한 마디 안 하셨지. 그런 가풍 덕에 좋아하는 공부 실컷 할 수 있었던 것 같소”

영농에 관한 연구로 그 시절에 이미 비닐하우스 공법을 이용했던 장 옹은 오로지 농사일만으로 기울었던 가세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동네의 농업 교육도 도맡아 했고, 초대 새마을지도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해야 할 의무 느껴

장세진 옹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것은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그는 수락하지 않았다.

지인들을 총동원해 겨우 승낙을 받았으나 면대하고 앉아있는 순간까지  ‘다른 이를 찾아보라’고 했다.

그러나 장 옹은 그 누구보다 본 코너의 적임자였다.

“구한말을 살았던 어르신들의 삶을 들어 기억합니다. 그들이 내게 전했던 역사와 전설을 내 다음 세대에 들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느끼지요. 또 내가 살았던 삶과 시대 역시 전해야 할 역사의 한 부분임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본 지면을 통해 그가 기록하고 있는 역사-비록 창선면에 한정된 역사지만-를 미처 소개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독자들은 실망하지 않아도 좋다.

그의 기록은 내년 초에 모습을 드러낼 ‘창선면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오롯이 전달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문득 궁금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는 자신의 삶을 역사화 시킬 자신이 있는가.

아니면 적어도 자신이 숨쉬고 있는 시대의 역사적 가치를 자각하고 있는가.

그도 아니라면 과거와 현재를 통해 보고들은 바를 따라올 세대에게 전해야 할 신성한 의무는 느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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