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기준을 제시하고 올바른 판단으로 이끌어 줄 ‘어른’의 가르침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각계에서 혹은 초야에서 혜안으로 세상을 관망하고 있는 어르신들을 찾아 가르침을 얻고자 한다. 우리 안에 올곧은 기준이 자리 잡길 기대한다.
우리의 가치 지키고 새 것 받아들여야
바람이 대밭을 지나는 청량한 소리가 계절 때문에 다소 쌀쌀하다. 그러나 한학자의 집에 대밭이라... 벌써 그림이 그려진다고 마음으로 흡족해 하며 들어섰다.
우리의 가치 지켜놓고 세계화해야
공자의 ‘호연지기’와 ‘삼강오륜’, ‘단일 백의민족’에 ‘동방예의지국’까지 류 옹의 가치관은 유학에 그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었다.
“새로운 가치를 배척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시대의 흐름을 타는 유연성을 잃은 나이지만 서구로부터 밀려드는 문명을 전부 부정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반드시 지켜야할 우리 것을 잃지는 말아야지요.”
그러나 현 젊은 세대들은 지키는 것보다 버리고 다시 취하는 것에 더 익어가고 있다. 그들의 외침 ‘대∼한민국’은 ‘내갗 중요한 개인주의의 소산이지 전통의 애국·애족과는 가는 길이 다르다.
그들에게 류 옹의 목소리와 가르침은 실바람처럼 귓등을 간질이다 말 것이 분명했다.
젊은 세대.
류 옹의 깊은 가르침을 듣고 있는 기자가 그의 뜻을 잘 세기고 있는가 하는 반성이 불러일으킨 생각이다. 듣고 전해야 할 중간 도구로써의 기자는 그러나 이 시끄러운 세상에 그의 작은 목소리를 잘 전달할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오늘을 바로 세우는 것이 근본
“이제의 오늘은 오늘만의 오늘이 아니고 예로부터 내려오는 오늘이다. 그 오늘을 아름답게 가꾸어 미래에 옮기는 것이 사람 사는 근본이다”
일본의 대학자 아카키 토모나우의 말을 인용하며 류 옹은 모든 인간 삶의 근본을 ‘오늘’이라고 설명한다.
유구한 역사의 끝에 있는 오늘은 그 역사의 무게 때문에 쉽게 지나칠 한 날이 아니며, 내일과 더한 미래를 완성하기 위해 마련된 귀한 한 날이었다.
내가 오늘이라면 조상과 부모는 과거의 역사이며 내 미래와 후손들은 나로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이라고 류 옹은 말한다.
유학은 ‘공자 왈, 맹자 왈’이 아니라 사람이 삶의 근본,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유학은 지구가 존재해 그 안에 인간이 생존해 있는 한은 매몰되지 않을 겁니다”
13대째 내려오는 종가를 지키며
류 옹은 할머님의 모시 적삼 등을 기억한다고 했다.
한학자였던 류 옹의 할아버님은 할머니 등에 업힌 철없던 시절부터 손자에게 천자문과 사자소학 등을 가르쳤다고 했다.
“내가 어머니 태 안에 있을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홀로 되신 어머니는 힘들게 누이와 나를 기르시다 그마저도 3살 되던 해 돌아가셨지요. 할머님과 작은아버지 손에 자랐습니다. 조실부모로 외로울 손자에게 서두르다시피 한학을 가르치던 할아버님께서도 내 나이 9살이 되자 유명을 달리 하시고...”
류 옹의 이마 언저리가 붉게 물들고 깊은 두 눈이 그렁그렁해지자 그는 애써 웃으며 기자의 눈을 피한다.
“에, 그러니까 할아버님이 강조하셨던 것은 音(소리 음). 日(날 일) 위에 立(설 립)이 있어 오늘을 바로 세우는 것이란 해석이 가능한 글자지.”하며 아까 한 말을 다시 하신다.
홍시를 내 오셨다. 잘 먹을 줄을 몰라 줄곧 참한 척 하던 기자의 입 언저리와 두 손은 홍시 범벅이 됐다. 멋쩍은 듯 웃어 보이며 일어나자 홍시 하나와 사탕을 두 주먹 가득 쥐어주셨다.
류 옹의 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며 불현듯 그가 말했던 삶의 근본과 지켜야 할 가치가 여기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든다.
한학의 난해한 글자들이, 그가 기자에게 말하고자 했던 그것이 바로 이 정과 존중과 공경을 향해 있었구나하는 깨달음이었다.
쏴-하는, 바람이 대밭을 지나는 소리가 계절을 넘어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