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기준을 제시하고 올바른 판단으로 이끌어 줄 ‘어른’의 가르침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각계에서 혹은 초야에서 혜안으로 세상을 관망하고 있는 어르신들을 찾아 가르침을 얻고자 한다. 우리 안에 올곧은 기준이 자리 잡길 기대한다.

우리의 가치 지키고 새 것 받아들여야


▲ 류우석 옹은...

1926년 2월 서면 정포 출생
1941년 남해읍내공립심상소학교 졸(현 남해초)
1948년 중앙농민고등훈련원 실수과 졸
1965년 서면사무소 서기
1984년 남해향교 충효교실
1991년 충렬사 모충회 총무
1994년 성균관 유도회 남해지부회장(97년 재임)
동네 사람들에게 류우석 옹의 집을 묻자 한결같이 “저어리 가서 저어리 가면 저 집 건너 그 집”이란 친절(?)한 안내 덕에 30여분을 헤매다 류 옹을 만났다.
바람이 대밭을 지나는 청량한 소리가 계절 때문에 다소 쌀쌀하다. 그러나 한학자의 집에 대밭이라... 벌써 그림이 그려진다고 마음으로 흡족해 하며 들어섰다.


우리의 가치 지켜놓고 세계화해야

공자의 ‘호연지기’와 ‘삼강오륜’, ‘단일 백의민족’에 ‘동방예의지국’까지 류 옹의 가치관은 유학에 그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었다.
“새로운 가치를 배척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시대의 흐름을 타는 유연성을 잃은 나이지만 서구로부터 밀려드는 문명을 전부 부정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반드시 지켜야할 우리 것을 잃지는 말아야지요.”
그러나 현 젊은 세대들은 지키는 것보다 버리고 다시 취하는 것에 더 익어가고 있다. 그들의 외침 ‘대∼한민국’은 ‘내갗 중요한 개인주의의 소산이지 전통의 애국·애족과는 가는 길이 다르다.
그들에게 류 옹의 목소리와 가르침은 실바람처럼 귓등을 간질이다 말 것이 분명했다.
젊은 세대.
류 옹의 깊은 가르침을 듣고 있는 기자가 그의 뜻을 잘 세기고 있는가 하는 반성이 불러일으킨 생각이다. 듣고 전해야 할 중간 도구로써의 기자는 그러나 이 시끄러운 세상에 그의 작은 목소리를 잘 전달할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오늘을 바로 세우는 것이 근본

“이제의 오늘은 오늘만의 오늘이 아니고 예로부터 내려오는 오늘이다. 그 오늘을 아름답게 가꾸어 미래에 옮기는 것이 사람 사는 근본이다”
일본의 대학자 아카키 토모나우의 말을 인용하며 류 옹은 모든 인간 삶의 근본을 ‘오늘’이라고 설명한다.
유구한 역사의 끝에 있는 오늘은 그 역사의 무게 때문에 쉽게 지나칠 한 날이 아니며, 내일과 더한 미래를 완성하기 위해 마련된 귀한 한 날이었다.
내가 오늘이라면 조상과 부모는 과거의 역사이며 내 미래와 후손들은 나로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이라고 류 옹은 말한다.
유학은 ‘공자 왈, 맹자 왈’이 아니라 사람이 삶의 근본,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유학은 지구가 존재해 그 안에 인간이 생존해 있는 한은 매몰되지 않을 겁니다”


13대째 내려오는 종가를 지키며

류 옹은 할머님의 모시 적삼 등을 기억한다고 했다.
한학자였던 류 옹의 할아버님은 할머니 등에 업힌 철없던 시절부터 손자에게 천자문과 사자소학 등을 가르쳤다고 했다.
“내가 어머니 태 안에 있을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홀로 되신 어머니는 힘들게 누이와 나를 기르시다 그마저도 3살 되던 해 돌아가셨지요. 할머님과 작은아버지 손에 자랐습니다. 조실부모로 외로울 손자에게 서두르다시피 한학을 가르치던 할아버님께서도 내 나이 9살이 되자 유명을 달리 하시고...”
류 옹의 이마 언저리가 붉게 물들고 깊은 두 눈이 그렁그렁해지자 그는 애써 웃으며 기자의 눈을 피한다.
“에, 그러니까 할아버님이 강조하셨던 것은 音(소리 음). 日(날 일) 위에 立(설 립)이 있어 오늘을 바로 세우는 것이란 해석이 가능한 글자지.”하며 아까 한 말을 다시 하신다.

홍시를 내 오셨다. 잘 먹을 줄을 몰라 줄곧 참한 척 하던 기자의 입 언저리와 두 손은 홍시 범벅이 됐다. 멋쩍은 듯 웃어 보이며 일어나자 홍시 하나와 사탕을 두 주먹 가득 쥐어주셨다.
류 옹의 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며 불현듯 그가 말했던 삶의 근본과 지켜야 할 가치가 여기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든다.
한학의 난해한 글자들이, 그가 기자에게 말하고자 했던 그것이 바로 이 정과 존중과 공경을 향해 있었구나하는 깨달음이었다.

쏴-하는, 바람이 대밭을 지나는 소리가 계절을 넘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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