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성 재
-남해역사연구회 문학분과위원장
-남해문학회원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만필에 수록된 것 중에 어느 정도 불교에 대한 승인 내지 공감을 내포하고 있는 몇몇 글에 대해 언급해 두고자 한다.

예컨대, 그 중의 한 글에서 서포는 佛陀(불타)가 자기 교의의 발전에 관해서 예언한 바가 역사적으로 적중하였다는 점에 감탄하고 있다.

다른 글에서는 불교 옹호론자들이 자기들이 신봉하는 종교가 아득한 옛날부터 중국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음을 증명하고자 제시한 여러 논의들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그러한 논의들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의외로 결론짓기를, 결국 중앙아시아 여러 부족을 통해 前漢王朝(전한왕조) 시대에는 이미 인도와 중국 간에 모종의 교섭이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보았다.

또 다른 글을 보면 그가 불교의 여러 개념이 지닌 깊이와 명석성에 감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의 글에서도 그는 한국의 문화와 문학이 불교에 얼마나 빚지고 있는가를 상기시키면서, 한국의 궁중의식 중 상당수가 불교에서 유래한 것임을 부인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조소하고 있다.

김춘택에 의하면, 김만중의 문장은 "유창하고 치달리듯 하며, 혹은 기괴하고 현묘한 까닭에, 어리석은 사람이 읽으면 멍멍해서 깨닫지 못하고 그 괴이함에 놀라서 급히 도망하는 데 겨를이 없을 정도이며, 혹 붓 대롱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정도의 견식이 있다면, 그나마 망한의 맛(忘閒味-망한미)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문장가였던 것이다.

만필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논증하거나, 불교와 주자학 및 주자의 학문태도에 관하여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특히 그는 남해 유배지에서 朱子語類(주자어류)를 치밀하게 읽어서 주자의 학문방법 자체를 비평하였으며, 유학의 틀 속에 머물지 않고 불교와 도가사상까지 섭렵하여 회의의 정신을 그 속에 담아냈다.

그는 내성과 회의의 정신으로 스스로의 학문에 대하여 끊임없이 반성하고, 당시의 지배적 관념체계를 내재적으로 비판하였다.

西浦의 불교관

朱子(주자)에 의해서 집대성된 성리학은 특히 理·氣(리·기)의 개념을 중심으로 해서 우주와 인간의 생성과 구조를 해명하고, 인간의 참된 도리에 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이 성리학의 중심주제는 理氣論(이기론), 心性論(심성론), 공부방법론, 經世論(경세론)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성리학의 가장 기본적 골간이 되는 이론은 역시 존재론으로서의 이기론이다.
朱子(주자)는 그의 모든 사상을 무엇보다도 理와 氣의 존재론적 이론 위에 정초시키고 있다.

그의 철학을 한 마디로 理學(이학)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理는 그의 모든 사상체계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의 사상은 이 理氣(이기)의 존재론이 뒷받침된 위에서 이해되어야만 하듯이 그의 불교비판 역시 예외일 수 없는 것이다.  

서포는 만필에서 성리학이 禪學(선학)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과 유학자들 중에는 선학에 빠져서 그 영향을 받은 이가 많다는 것, 신유학과 불가의 주장에는 서로 비슷한 점이 있다는 점, 주자의 불교비판 내용 중에도 잘못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유불도 삼교의 유사점 등에 관해서도 거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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