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천면 문항리 남해 3·1운동 발상 기념탑 앞에서 거행된 3·1절 기념식. 오늘의 정세가 그때의 암울했던 시기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귓전을 울리는 만세 소리는 가슴에 묘한 여운을 남깁니다. 그 묘한 여운, 아마 그것은 여전히 우리가 담아내지 못한 대통합에 대한 아쉬움은 아닐까요. 아니 어쩌면 105주년이라는 장구한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미완의 숙제로 남아있는 진리에 대한 목마름,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의 샘을 정착시키지 못한 아쉬움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독립 만세 운동을 불렀던 당시의 열정만큼이나 오늘에 있어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할 여운처럼 남겨지는 목마름과 아쉬움을 해소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다중의 생각이 혼재한 만큼 그것이 꼭 이렇다고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전체 의사를 반영할 주체적 이슈에서 조화와 상생의 원칙에 합당한 무엇이 있다면 이를 내면화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요즈음처럼 분열되고 혼란이 가중되는 사회에서는 혼재된 생각이나 이념을 뛰어넘는 한층 진일보한 의식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이러한 사례를 대표하는 것이 1919년에 일어난 3·1 독립 만세 운동입니다. 3·1 독립 만세 운동은 10년 전인 1910년부터 전국의 지도자 439명이 서울 강북구 우이동 봉황각에 집결하여 7차례 49일 수련을 시작하면서 발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의 염원이 가슴에 절실히 솟구치는 시대에 전 국민을 하나로 잇게 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특별한 결기가 있어야 했습니다. 이 특유의 결기, 그것은 다름 아닌 이신환성(以身換性)이었습니다. 몸을, 성령을 바꾼다는, 몸을 초개와 같이 버리리라는, 죽음도 불사한다는 지도자의 결기가 정신을 최고조에 이르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발화점이 되어 전국적인 3·1 독립 만세 운동을 가능케 하였습니다. 

그러한 결기가 담긴 장소, 여전히 남아있는 그때의 흔적을 가슴에 담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여서 필자는 얼마 전 우이동 봉황각을 방문한 바 있습니다. 춘삼월이긴 하나 여전히 쌀쌀해진 바람결을 맞으며 봉황각에 들어서니, 마치 그 옛날 이신환성으로 내면의 밝힌 선열들의 목소리가 귓전에 생생하게 들려오며 그 강한 눈빛, 결연한 의지,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신념이 눈앞에 선하게 펼쳐지는 듯하였습니다. 봉황각 곳곳에 깃든 선열들의 결기에 동화된 듯 묵념을 올리니 주변이 사뭇 엄숙해지기까지 합니다. 

아련히 떠오르는 지난날의 기운에 도취 될 사이 없이 당시 독립을 위해 분연히 일어선 선열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얼마나 간절하였을까요? 또한, 얼마나 지극하였을까요? 간절함과 지극함을 담은 선열들의 결기에 바람마저 놀라 비껴가고 있었습니다. 다소곳한 목조건물에 뒤로는 북한산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봉황각. 주말이면 담 옆으로 뻗어있는 등산로에 사람이 붐벼 소란스럽기는 하나, 선열들의 강렬한 외침에 파묻혀 허공을 가로지를 뿐입니다. 

지금은 등산로가 있어 산을 오르는 등산객에겐 요긴한 이동로가 되고 있지만, 일제 강점기 시절만 해도 첩첩이 숲으로 뒤덮인 산세에다 호랑이까지 출현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골이 깊은 산속이었습니다. 이러한 산중에 목조건물인 봉황각을 짓고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수련과 기도를 하기 시작한 것은 구국의 일념을 극대화하기 위한 힘을 배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결기가 있었기에 몸을 성령으로 바꿀 다짐, 굳센 의지와 신념을 내면에 정착시키는 일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대통합과 비폭력이라는 공존의 질서를 도출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거울삼을 때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는 혼재된 마음을 하나로 통합하는데 그 의지와 신념이 어느 정도인지, 여느 대상과도 하등의 차별, 분별없이 하나의 마음으로 이끌 의지가 있는지, 또 이를 다지기 위한 일념에서 마음의 힘을 어떻게 응용할 것인지를 살펴보는 것도 3·1절의 의미를 되살리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3·1 독립 만세 운동의 핵심이라 할 대통합, 비폭력의 비전으로 민족을 하나로 뭉치게 한 동기가 되었다면 오늘의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또 그러한 결기가 가능하도록 정신력을 최고조로 올릴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 정도의 결기나 비전 없이 3·1운동을 기념식 치르는 것에만 의미를 두려 한다면 선열들이 10여 년 동안 준비하면서 닦아온 이신환성(以身換性)의 정신을 퇴색되게 할 뿐입니다. 비폭력, 대통합은 이 순간에도 분열을 넘어, 하나가 되는 경이로움이 연출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특히 문명의 발달에 맞물러 마음을 다스리려는 근기가 약해지는 현실에서 우리가 지향하여야 할 비폭력, 대통합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에 걸맞은 결기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결기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이를테면 차이와 경계를 두지 않으며, 생각과 감정은 본래의 내가 아님을 깨닫고, 원망과 분노를 지닐수록 자신이 그러한 감정들로 인해 오히려 더 해로움을 당할 수 있으며 그래서 원한을 품지 않고 용서하고 이해하는 품성을 기르고, 과거의 일에 치우치지 않고 자비와 사랑을 내면화하면서 새로운 시작은 늘 지금의 몰입에 있다는 전환적 사고로서 임한다면 보다 향상된 비폭력과 통합의 마인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비전을 예상하면서 당시로부터 105년이 지난 오늘, 설천면 문항리 남해 3·1운동 발상 기념탑 앞에서 그 꿈을 마음으로 현실화하여 봅니다. 이신환성을 통하여 일으킨 정신의 극대화가 통합과 비폭력의 원대한 꿈으로 이어졌듯이 오늘 우리에게 부여된 이신환성은 걸림 없는 마음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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