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동 길​​​​​​​​​​​​​​​​​​​​​​​​​​​​숭실대 명예교수
류 동 길​​​​​​​​​​​​​​​​​​​​​
​​​​​​​숭실대 명예교수

설날이 다가왔다. 설날부터 진짜 갑진(甲辰)년 청룡의 해가 시작된다. 꿈 중에서도 으뜸은 용꿈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면 용꿈을 못 꿀 까닭이 없다.

설 명절이면 어디에 살건 마음은 고향으로 달려간다. 좁은 방구석 시루에 자라는 콩나물 냄새는 구수했고, 떡메 치는 소리는 배 고픈 시절의 복음이었다. 보고픈 얼굴들이 한바탕 웃고 나면 온갖 시름도, 가슴 아픈 사연도 사라졌다. 만남과 어울림의 효과였다.

세상은 크게 변했고 또 변하고 있다. 살림살이도 과거보다 크게 나아졌지만 살기 힘들다고 느낀다. 남과 비교하며 더 좋은 걸 바라기 때문이다. 고민 한 조각 없는 사람은 없다. 남이 행복해 보인다면서 부러워만 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스스로 즐거운 마음을 키워서 행복을 불러들여야 한다,

경제적 조건은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에 불과하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새뮤엘슨 교수는 일찍이 행복을 소비와 욕망과의 관계(행복=소비/욕망)로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소비를 늘리면 행복은 커지고 욕망이 커지면 행복은 작아진다. 소비는 무한히 증가할 수 없고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 행복하려면 허황한 욕망을 줄여야 한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누군가가 산길을 가는데 “돌멩이를 몇 개 가져가세요. 내일 아침이면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돌멩이를 몇 개 골라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그게 다이아몬드였다. 무척 기뻤다. 그러나 기쁨은 곧 사라지고 돌멩이를 더 많이 가져오지 않은 걸 후회했다. 만족할 줄 모르면 행복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인생은 지름길이 없다-하버드대 인생학 명강의》에 나오는 글이다.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라도 명절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기회다. 사람들은 행복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을 느끼지 않아도, 고통을 받으면서도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산다는 건 견디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노랫말처럼 언제부턴가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 모두 제 살기 바빠선지, 아니면 개인주의 때문인지 모르지만. 가족이라는 틀이 깨지고 있다. 명절은 그런 가족의 마음을 한데 모으는 기회다.

어려움이 닥쳐도 부모 형제 자녀들이 서로 믿고 돕는 따뜻한 정이 넘쳐흐르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가족은 삶을 지켜주는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왕이건 농부건 자신의 가정에서 평화를 찾아낼 수 있는 자가 가장 행복한 인간이다.” 괴테의 말이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다는 가족 이야기도 있다. 아내가 앓아눕게 되자 아무런 대책이 없던 남편은 인삼 한 뿌리를 구해 산삼이라며 아내에게 건네주었고, 그걸 먹은 아내는 건강을 회복했다. 그런 후 남편은 아내에게 먹인 게 산삼이 아니라 인삼이었다며 거짓말을 실토했다. 아내의 답은 이랬다. “저는 인삼도 산삼도 먹지 않았어요. 당신의 사랑만 먹었을 뿐이에요.”

명절은 가족의 사랑을 다지고 갈등을 녹이는 기회다. 흩어졌던 가족이 모여 서로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 나누는 기쁨을 어디에 비하랴. 그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고 삶의 환희다. 버스 떠난 뒤 손들면 무엇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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