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식 템스코 회장
유명식 템스코 회장
해군사관학교에 발전기금 전달
해군사관학교에 발전기금 전달
호치민세무국에서 2023년 우수납세자 표창장을 받았다
호치민세무국에서 2023년 우수납세자 표창장을 받았다

유삼남 전 해양수산부 장관 추천으로 지난달 17일 사당역에서 창선면 장포리 출신인 템스코(TEMSCO) 유명식 회장을 만났다. 점심을 먹으면서 유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템스코는 어떤 회사인가

템스코는 플랜트 및 산업설비 전문회사로 2005년 1월 설립 후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을 축적해왔다. 공장, 발전소, 정유시설 등 플랜트설비 공사와 대형건물의 골조, 배관, 배수, 소방설비, 빌딩자동화 등이 주사업 분야다. 설립 당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회사로 수주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프로젝트 규모에 상관없이 뛰어난 기술력과 완성도 높은 공정으로 업계의 신뢰를 받으며 탄탄한 중견업체로 성장했다. 2010년도에는 수주금액 1천만 달러, 매출액 8백만 달러에 불과하던 실적이 지금은 매출 2천5백만 달러 규모로 키웠다. 그동안 포스코건설의 후에(Hue)종합병원 등 350여 개의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현재는 하이퐁에 건설중인 LG전자, LG Display공장의 산업설비와 대형 소방설비 공사를 수행하고 있다

▲템스코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직영공사와 기술력이다. 템스코는 수주 받은 공사현장에 한국인 공사관리자를 상주시키고, 현지 기술자를 직접 고용해 직영공사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비용을 낮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업의 완성도도 높일 수 있다. 또한 템스코는 첨단기술이 필요한 공사를 위해 한국의 경험 많은 전문가를 영입하여 공사를 관리한다. 공사의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풍부한 경험을 가진 전문가가 공정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 템스코의 입장이다. 그 결과 양질의 결과물을 낼 수 있어 템스코와 고객 양쪽 모두 만족도가 높다. 향후 베트남의 플랜트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템스코는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고 있다. 인맥이 아니라 확실한 실력과 경쟁력 있는 조직, 그리고 앞을 내다보는 경영자의 안목이 중요하다.

▲앞으로 템스코의 발전 방향은

지금까지 베트남은 인프라 구축 및 플랜트 개발이 저조했지만, 국력이 신장되고 소비재시장이 커지며, 중간개발 국가로 진입하면서 플랜트 산업의 활성기가 도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제철소와 화학플랜트 경우 한국기업이 많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발전소 건설, 정유시설, 대규모 화학단지 등의 개발이 예정되어 있다. 베트남 기술이 취약한 만큼 앞으로 템스코의 역할이 크리라 본다. 회사 내부적으로는 직원 복지향상에 더 투자할 계획이다. 한국에서 온 일부 직원들을 제외하고는 가족들은 한국에 두고 혼자 지내는 경우가 많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애로사항을 해소하기 위해 유 회장은 복지향상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20년 넘게 베트남에서 현지화 된 기업을 경영하여 유 회장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신뢰다. 베트남에서 외국기업으로서 신뢰를 구축하지 못했다면 현지의 텃세와 경쟁력을 넘어서기 어려웠을 것이고 템스코를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시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유 회장은 템스코의 능력을 벗어나는 무리한 공사수주나 투자는 하지 않는다.

▲베트남에 진출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베트남 진출 1세대로서 조언하자면 반드시 전문성을 키우고 그 나라의 문화와 정서, 국민성, 법률문제, 경제성 등에 대한 사전조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 베트남은 1억 인구로 양질의 인력자원이 있고 석유나 광물자원도 풍부해 여전히 발전가능성이 높은 나라다. 앞으로 베트남 진출은 기술과 자본을 투자하는 하이테크 산업이나 문화산업으로 바뀌어야 한다. 특히 베트남도 K-Pop과 한국 드라마의 영향으로 한류 열풍이 일어나고 있어 문화산업이 유리한 입지에 있다. 한국기업이 베트남이나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같은 동남아의 신흥 시장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유 회장은 창선면 장포리 출신으로 창선중. 창선고, 해군사관학교를 졸업(1978년)했다. 2005년 베트남 법인, 2013년 한국법인, 2013년 미얀마 법인을 차례로 설립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1984년 해군대위로 전역한 후 31세때 ㈜한진 선장(1984.~1988), ㈜한려항만 전무이사(1990.~1995), ㈜코스틸 전무이사(베트남 법인장(1995.~2001), 포스코건설 베트남 법인장(2001~2004)을 역임했다.

유 회장은 17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베트남협의회장, 호치민 한국국제학교 이사장(3년), 베트남 한인상공인연합회 수석부회장(4년), 베트남한국건설사 협회장(6년)을 역임했고. 2003년 산업자원부장관 표창, 2010년 대통령표창장을 받았다.

유삼남 전 해수부장관은 “유명식 후배는 바다와 청운의 꿈을 품고 해군사관학교에서 심신을 단련했다. 임관 후 해상에서 위관시절을 보낸 후 전역했다. 다방면의 경력으로 베트남에 진출해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유 회장은 남다른 사회봉사로 베트남에서 추앙을 받고 있으며 인재교육에도 적극적이다. 해군의 각 단체에도 발전기금과 봉사로 헌신하고 있다. 가난했던 소년시절 국가로부터 교육받은 덕에 보답하기 위해서 사업으로 얻은 수익의 많은 부분을 사회에 되돌려주겠다는 애국애족의 충무공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점을 칭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유 회장은 호치민 세무국에서 2013년, 2023년 두차례 우수 납세법인 표창장을 받기도 헸으며, 한국과 호치민을 오가며 왕성하게 일하고 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국가 지원으로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베트남 한국학교 한인학생들의 어려움은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다. 호치민시 총영사의 부탁을 받고 하도급업체의 부도로 증축공사가 중단된 호치민시 한국국제학교 교실 증축 공사를 한국의 모회사 본사를 찾아가 협조를 받아내 해결했다. 교실이 완비된 이후에도 학생들의 학업을 돕기 위해 노력했다.

아프리카 먼 바다에서 한국 상선들을 보호하는 청해부대가 호치민에 잠시 정박하거나, 해군사관생도 훈련함이 호치민에 방문하면, 유 회장은 후배들을 찾아가 위로해 주고 있다. 앞으로도 그런 한국해군 사랑은 지속될 것이라 한다.

해군 고속정장으로 근무하면서도 부하들과 지내며, 급여가 남아 나지 않을 정도로 부하사랑이 남달랐고 한다. 월급날이면 아내에게 미안했다. 아내는 간호장교였다. 결혼 후 아내는 전역을 하고 교사로 일하면서 그가 가는 길을 따라와 주었다. 대위를 마지막 계급으로 그는 군을 떠났다.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중동에서 특수선 선장으로 큰 바다를 누볐지만, 해군 조직사회에서 체계화된 장교로서의 자질은 그를 다시 한국 대기업에 문을 두드리게 했다. 그는 바다에서 다시 뭍으로 올라왔다. K건설사 임원을 거치고 2001년부터 2004년말까지 포스코건설 베트남 법인장을 맡으며 베트남에서의 경험을 쌓아 나갔다. 포스코건설 법인장을 끝으로 그는 현지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전 회사의 동료들과 관계는 평소처럼 유지했고, 서로 돕는 협력자가 되었다. 한국국제학교를 증축의 애로사항을 믿고 도와준 본사 회장님과 사장님의 고마움도 잊지 않고 있다.

사업 초반기 어려울 때 도와준 친구들이 많았다. 해군장교의 자긍심과 사람이 사람을 돕는다는 철학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해군사관학교 발전기금 1억원 개인목표도 이루었다. 그 밖에 군의 간부 교육 기관인 육군 부사관학교 발전기금, 베트남대학 졸업생 3년 부경대학교 박사과정 비용도 기부하였고, 육군사관학교 발전기금도 준비하고 있으며,앞으로도 지속적인 사회기부사업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한다

남해의 작은 바다에서 대양을 거쳐 호치민에 기항한 유 회장의 배는 언젠가 국가가 필요할 때면 닻을 올리고 대한해협 넘어 조국의 바다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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