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아침 산책을 즐깁니다. 산책 코스는 주로 동네 앞 논길인데 시작점과 끝 지점이 일직선으로 쭉 뻗어있어 걷기에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걷는 것에 불편함이 없다 보니 요즈음처럼 한겨울에도 멈출 수가 없을 만큼 일상화되어 버렸을 정도입니다. 

겨울의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며칠 전에도 마을 앞 논길을 걷던 와중이었습니다. 필자가 걷던 때와 같은 시간에 마침 아침 산책을 나오신 동네 어르신 한 분을 만나게 됩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어르신인지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꽤 오랜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같은 마을에 있으면서도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농사에 대한 전망이라든가 논에 대한 활용이 줄어드는 현실에서 종종 논 주인과 부치는 사람과의 미묘한 갈등도 생긴다는 이야기도 곁들입니다. 

물론, 그렇게 이야기하시는 어르신 역시 논을 부치는 당사자의 입장이라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일단에서 나오는 객관적인 추증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때 부치는 사람과 논 주인과의 관계 이야기가 입에 오르내리는 순간, 어르신은 갑자기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째 이리 서로 원수가 되었는고. 살다 보면 생각이 다를 수도 있는데 그 쪼갠 일로 너 이제 안 본다, 죽을 때까지 안 볼 거다 라고 해버리모 우짜노. 마! 그 나이 되모 다 내려놔야 하는 기라. 다 내려놔야 제. 죽어서도 다시 안 볼기라 카는데, 그게 얼마나 무서운 말이고. 이제 내려 놔야제, 내려 노모 다 해결이 되는 기라.”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담긴 말이 누구에게 향하는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 논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입장이 달라 이를 고수하려는 각각의 입장이 부딪쳐 생겨나는 갈등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임을 짐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가슴을 울리는 어르신의 외침에 필자가 고무된 것은 살다 보면 다를 수도 있다는 것과 내려놓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를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내려놓아야 한다는 이 말은 선각자나 현자들이 밝힌 어록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여서 더욱 귀를 솔깃하게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곳이 진리의 물결이 흐르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마을 어르신을 통하여 체감하는 외침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다르다는 것은 일상 흔히 겪는 일이기는 하나, 대체로 생활 방식과 부모의 훈육방식에 따라 성격이나 인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입니다. 문제는 이 다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인정하거나 수용할 수 있는 시야를 얼마만큼 확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참으로 어려운 과제입니다. 

필자가 어렵다고 표현한 것은 대개 분쟁이 일어났을 경우 서로의 의견이 첨예하고 대립되어 나와 반대되는 생각을 지닌 상대는 미움과 원망의 대상, 척결의 대상으로 여기는 풍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들이고 다 내려놓아야 한다고 강변하는 어르신의 당당함에 그만 매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우리 시대에 만연된 이러한 사고(思考)를 깨쳐야 한다는 절박함을 호소하는 듯하였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사(人間事) 성공의 운수를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어르신의 외침은 지구인의 흥망을 가름할 일대 명연설이 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스치는 겨울바람마저도 어르신의 격정적인 연설에 귀 기울이는 사이, 다름과 함께 또 한 울림이라 명명할 내려놓음의 파장이 또한, 길게 여운을 남깁니다. 그러면서 소리칩니다. “어느 시대이든 사람이 과연 정확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정작 가벼워야 할 마음 무게가 왠지 모를 인위적인 습관으로 인하여 더 무거워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만큼 습관심이 만연된 사람은 외형으로 보기만 해도 무게가 상당히 나가는 것으로 보이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그 습관심이란 것은 자신의 영혼이 담긴 진정한 정체성이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더욱 내려놓음의 철학이 통용되어야 하는 까닭이지요.” 

이런 맛깔스러운 대화에 필자는 이렇게 제안을 해봅니다. “그래요 맞는 말입니다. 내려놓음의 철학은 복잡한 도심에서도 활용할 수 있지만, 조용한 산길이나 외길,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 홀로 걸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모든 직위나 명예 다 내려놓고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 자연 속에서 고요를 맛보며 걸어보는 그 순간, 아마 그 순간은 평소 경험하지 못한 묘한 성취감 같은 기운이 전신을 감싸듯 휘감아 돌아옴을 느끼게 될 거예요. 뭐라고 할까요. 다름을 인정하고 내려놓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자유심(自由心) 같은 기운입니다. 어쩌면 그 순간이 자신의 진실과 순수성이 만나게 되는 가장 극적인 순간이 아닐까요.” 

이런 문답에 고무된 겨울바람은 조금 전 어르신이 밝힌 “살다 보면 다를 수도 있는데, 그 나이 되모 다 내려놔야 하는 기라”의 다름과 내려놓음의 철학에 깊이 공감하면서 한편으로 세상 어디엔가 반드시 존재하고 있을 이러한 세계의 훈풍을 전하기 위해 또 힘차게 날아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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