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철​​​​​​​월간 좋은생각, 창간인
정용철​​​​​​​
월간 좋은생각, 창간인

나는 남해가 좋다. 뛰어난 풍광이나 지난날의 추억 때문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지금의 남해 사람들이다. 가능하면 일찍 남해읍 전통시장에 가 보라. 세상 어디에 그런 반가움과 정겨움으로 시장을 찾는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하는 곳이 있단 말인가. 그들이 파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성실한 일상의 숭고한 아름다움이다.

홍덕정 남면 면사무소와 버스 정류소 사잇길을 오후에 걸어 보라. 꿈에나 그리는 느림의 평화가 겨울 햇살보다 길게 늘어져 있다. 무지개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내 친구 석환이가 보내 주는 마늘과 시금치는 깊은 우정과 성실이 아니면 결코 낼 수 없는 맛이고 당당함이다.

오리정 파란 지붕, 내 친구 윤보가 남해에 가면 온 섬에 온기와 생기가 오라처럼 피어오른다. 초긍정의 활기찬 목소리는 언제나 우리를 희망으로 밀어 올린다.

지족에 사는 우리 누님은 “그러면 나만 손해”라는 깨달음으로 큰 슬픔을 탈탈 털고 일어나 굴 까기, 시금치 고르기, 마늘종 뽑기 다니느라 철마다 얼마나 바쁜지 모른다.

어디 이 뿐이겠는가. 바다에서 논밭에서 가게에서 가정에서 요즘의 남해 사람들은 어느새 찾아온 긍정의 힘에 자신들이 놀라 어리둥절하고 있다.

남해와 여수 사이에 새 길이 생긴다는 오랜 숙원이 착착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군청을 새로 짓고, 여기저기 도로가 넓어지면 하루가 넉넉해 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도 아니다. 사촌 해수욕장이 전국에서 가장 관리를 잘하는 해수욕장 세 곳 중 하나로 선정되어 어깨가 으쓱하기 때문도 아니다.

오램과 새로움, 처음과 나중, 청년과 노년, 주민과 공무원, 군민과 관광객이 서로를 향해 손짓하다가 드디어 악수를 하고 손을 잡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명은 해가 동산에 오르기 전에 이미 퍼져 있는 빛이다. 여명 같은 긍정의 힘, 희망의 설렘이 이미 남해 곳곳에 잔잔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안에서 아이처럼 놀고 자고 먹고 공부하고 일하고 자라면 된다. 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새로운 날들을 선물로 받으면 된다.

새해라는 시작은 시간이라는 선 위에 점 하나를 찍는 것이다. 이 점이 숭고한 이유는 이 점으로 ‘없음’에서 ‘있음’이 되기 때문이다. 그냥 지나가면 아무 일도 없을 시간이 작은 점 하나로 ‘있음’이 되어 우리를 새롭게 결심하고 행동하게 한다.

나는 「좋은생각」 2024. 1월 호에 이런 글을 썼다. “......나는 시작의 점 위에서 어떤 하나를 생각 한다. 버려야 하고 가져야 할 많은 것들 중에서 단 하나만이라도, 한 번만이라도 행하고 싶다.

한 사람이라도 영원히 사랑하기. 한 곳의 청소라도 반짝이게 하기. 한 권의 책이라도 충분히 읽기. 한 편의 글이라도 솔직하게 쓰기. 한 번의 대화라도 끝까지 귀 기울이기. 올해가 끝날 때 나는 그 ‘하나’와 함께 환희의 춤을 추리라.”

나는 환희의 춤을 기다리지만 남해 사람들의 춤은 이미 시작됐다.

타고르는 ‘사랑은 이미 문이 열려 있음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상대방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기다리고 있음을 아는 것이 곧 사랑이라는 이야기다. 사랑하면 무엇보다 먼저 마음을 열지 않는가. 마음이 열리면 언제 어디에 있든지 함께 있는 것이다.

남해의 2024, 새해의 문은 이미 열려 있다. 우리는 그곳으로 달려가 날마다 주어지는 선물, 하루하루를 감사로 누리면 된다. 갈등과 어색함을 거두고 서로에게 악수를 청하자. 손을 잡고 춤을 추자. 한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자. 함께 길을 나서자. 우리의 두려움은 닫힌 마음의 문들이었다. 이제 그 문들은 어디를 가든지 열려 있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아브라함 헤셀이 말했다. “만족하지 않는 사람은 진정 갈망하지 않는다”고. 맞다. 나의 모든 갈망은 내가 경험한 만족들로부터 태어났다. 현실의 만족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무엇을 갈망해야 할지를 모른다. 일상의 작은 만족들이 그때마다 새 희망을 만든다. 우리가 지금 여기의 현실을 만족하고 있다면 갈망은 희망이 되어 이미 우리 안에 들어 와 있다.

2024 갑진년 새해, 우리 남해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만족과 희망, 사랑과 기쁨으로 가득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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