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태어난 남해 설천 문항리

집은 없어지고 옛터 위로 찻길이 나 있었네.

그때 사립문 밀고 나간 신발은 어디로 갔을까. 만세 운동 아버지 거제로 하동으로 쫓겨가던 길섶마다 고무신 자국 오종종종 따라 걷던 어린 신발, 여수 광양 망덕포구 양조장집 댓돌에서 동래고보 연희전문 누상동 북아현동 노숙의 밤 함께 지샌 기룬 신발,

학병 갈 때 맡긴 동주 원고 어머니 마루 밑에 감춘 사연 전장서 죽었다 돌아온 날 깜깜한 항아리 속 불 밝히며 웃던 신발, 제 책보다 동주 시집 먼저 내고 부산대 서울대 하버드 파리대 오가면서 한국문학 브리태니커백과에 등재하고, 두 다리 한번 뻗어보지 못한 그 신발 없었다면 국어국문학회며 시조문학사전 국문학산고 한국고전시가론 다 없었을 테니

백 년 전 그 길 따라 나도 함께 걸었던가. 남해 서면 우물 지나 상주 금산 삼동 물건 코 묻은 미투리로 포항 마산 서울 간도 도쿄 교토 오사카 후쿠오카 역사의 고비마다 한 백년 콕콕 구두점을 찍어가며, 빛바랜 신발 자국 맨발을 맞대보다 백고무신 옆구리에 비친 옛집 처마의 푸른 그늘을 만져보다

눈 덮인 시내에 글 읽는 소리 미끄러지듯 코 닳은 신발 끝에 허리 낮춰 몸 치수 재듯 설천 마을 문항 마을 흰 손을 마주 잡고 흥얼흥얼 흔들면서 은하수 물길 너머 한세상 다시 찾아 떠나기도 하였던가

시인 고두현
시인 고두현

시인 고두현

· 1963년 경남 남해 출생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 시집 : 늦게 온 소포, 달의 뒷면을 보다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등

·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유배문학특별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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