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마을 어귀에 들어설 때면 늘 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노모(老母) 한 분이 나지막한 돌담에 앉아 앞산을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어떤 때는 누군가가 그리워서, 또 어떤 때는 오가는 사람을 구경하는 재미가 그만일 것 같아 앉아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분이 전부일까요. 약간은 쌀쌀한 날씨임에도 햇빛이 들기만 하면, 어김없이 돌담에 앉아 산을 응시하는 모습은 무언가 애절한 사연이 있는 듯합니다. 그 사연이란 마치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아니 꼭 올 것이라는 희망을 마음에 담아 하염없이 기다리는 여정을 되풀이하는 것 같기도 하여 숙연함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노모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아들일까요, 아니면 딸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먼저 떠나보낸 남편에 대한 그리움일까요. 알 수 없는 상념에 잠길 무렵 문득 노모의 얼굴에서 간절함과 애절함이 서린 모성 본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대개 어머니의 마음속에 남겨진 간절함과 애절함은 당신 자신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자식에 대한 사랑과 직결되어 그 의미를 간직하고픈 모성 본능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본능이 시대 변천에 따라 모성애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지고, 요양 복지가 만연된 시대라 해도 여전히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는 모성의 실체는 오늘, 우리의 삶을 이끄는 길라잡이가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모성 본능에 대한 간절함과 애절함은 오늘의 우리에게 길이 출세하여 세간을 이끌 교훈이 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한 실체에서 어머니의 본능적 모성을 이야기하니 마침 생각나는 일화가 있습니다. 

구전이긴 하나 6, 25전쟁이 한창일 때 자식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의 간절함이 깃든 이야기입니다. 그 어머니는 여느 어머니와 같이 자식이 무사하기를 염원하며 매일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를 드립니다. 그 정성이 얼마나 갸륵했던지 그의 신심이 하늘에 이를 정도입니다. 궂은 날, 좋은 날 가리지 않고 지성으로 자식의 무사함을 기원하는데, 이날도 역시 몸과 마음을 다하여 기도를 드리는 와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칠흑 같은 밤하늘에 환하게 불을 밝힌 등불 하나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밤에 웬 등불인가 하고 의아해하던 어머니는 그렇지 않아도 주변이 어두운데 잘되었다며 주변을 밝힐 심산으로 그 등불을 잡아 기둥에 달아 매어놓습니다. 

하지만, 기도에 치중하던 터라 기둥에 매워 놓은 등불을 단단히 고정하지 못했는지, 바람결에 흔들거리는 모습이 곧 풀어질 것 같이 위태하기조차 하였습니다. 이러한 형국임에도 어머니는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지성으로 기도를 드리는데, 그 순간 기둥에 매달아 놓은 등불이 바람결에 흔들거리다 그만 끈이 풀어져 등불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 버린 것입니다. 하늘로 솟구친 등불은 한차례 바람과 맞닥뜨리다 방향 감각을 상실한 듯 홀연히 어머니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는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며 넋두리하면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더욱 애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이어갑니다. 

그럴 즈음의 그 시각, 아들은 격전지가 벌어지는 산야, 언제 적이 나올지 모르는 야밤에 진지 구축 작업을 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아들은 밤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등불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니! 이 밤중에 웬 등불이지, 옳지 저 등불을 잡아서 그렇지 않아도 주변이 어두워 앞이 잘 안 보이던 차에 잘 되었다”며 등불을 잡기 위해 손을 뻗칩니다. 그런데 잡힐 듯 잡힐 듯하던 등불은 잡히지 않고 자꾸만 옆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들은 그 등불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이 등불은 계속 옆으로 흘러갈 뿐입니다. 잡힐 듯 말든 등불은 어느새 아들을 원래의 길이 아닌 전혀 다른 길로 접어들게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수분 사이에 적의 폭탄 수 발이 처음 아들이 있었던 그 자리에 떨어진 것입니다. 만약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면, 아들은 폭탄에 맞아 숨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아들을 위험 속에서 구한 어머니의 지성은 등불이라는 불가사의한 빛의 안내를 받아 무사히 대피시킬 수 있게 하였던 것입니다. 정말 천운이라 여길 정도로 어머니의 간절함이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단면에는 원초적 사랑이 깃들어 있기도 하지만, 자식과 어머니는 원래 한 몸, 한마음이었다는 순일한 합일체였다는 각성의 의미도 깃들어 있습니다. 모든 현상이 둘이 아니요, 하나이듯 성심신(性心身) 혼연일체의 지성이 세상을 움직이게 할 원력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력에 순연한 마음이 깃들어 영롱한 마음 입자의 결정체가 세상을 바르게 이끄는 초석이 된다면 노모와 어머니의 극진은 새날의 의미를 찬란히 밝혀주는 궁극의 빛이 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이 원대한 힘, 위대한 사랑의 힘이 생애 전반을 가로지를 진리임을 밝히면서, 새해 남해 군민의 여정에도 광명(光明)이 도래하길 기원해봅니다. 그 길이 비록 험하다 해도 지성을 잃지 않는다면 가는 길 밝혀질 원력 역시 반드시 반응한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하여줄 새날이기도 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