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상 봉 작가
백 상 봉 작가

석교리의 옛 지명은 마을 입구에 장승이 있어 장승들이라고 불렀다. 마을 앞에는 치천이라는 큰 내가 있어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불편하고 큰물이라도 나면 임시로 만든 다리나 징검돌이 떠내려가기도 하였다. 400년 전 평산현에 현령이 주재 할 때 박 장군이란 장사가 있어 큰 돌로 다리를 놓아 사람들이 통행을 하게 하였다. 이 일이 있고 난 뒤에 지명을 석교라고 하였으며 석교리는 돌 석(石) 다리 교(橋)자를 쓰니 돌다리 마을이다. 경지정리 작업으로 돌다리가 필요가 없어지자 다릿돌을 마을 앞 공덕비가 있는 자리로 옮겨 놓았다. 전국에는 15개소의 석교리가 있고 지명의 근원도 돌다리, 독다리 석다리에서 유래한다. 일정규모의 돌다리를 놓으려면 마을이 크고 주민이 많아야 했으며 다리를 중심으로 마을을 나누기도 하였음으로 석교리는 상당히 큰 마을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석교리에 있었던 돌다리는 남해에 귀양 온 서포 김만중이 노도에 살면서 구운몽 소설을 지을 때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과 연화봉을 구경하고 돌아가는 팔선녀가 석교에서 만나는 것을 이 다리를 보고 쓴 것이라고 한다. 이규경(李圭景)은 소설변증설에서 구운몽은 김만중이 귀양 갔을 때 지어졌다고 하였는데, 그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그가 장희빈의 아들 이윤(李昀)을 세자로 책봉하는 것에 반대하다 선천에 귀양 간 숙종 14년(1688)인지, 아니면 장희빈이 인현왕후(仁顯王后) 대신 왕후로 책봉된 기사환국으로 숙종 15년에 남해로 귀양 갔을 때인지가 확실하지 않다고 하였으나 근래에 서포연보(西浦年譜, 일본 天理大學 소장)가 출현함으로써 일단 선천 귀양시기가 확실해졌으며, 그 완성은 남해 귀양시기로 추정된다고 한다.    

월포리는 달 월(月)개 포(浦)자를 쓰므로 옛날에는 다릿개로 불리다가 달개가 되었다. 달개는 한자 지명을 지을 때 본래의 뜻과 상관없이 달 월(月)자를 빌려 음차한 것으로 본다. 독뫼를 돌아나가는 치천에 다리가 있는 바닷가 마을이다. 전국에 분포하는 월포는 강이나 바다가 초승달이나 반달처럼 마을을 안고 흐르는 곳을 이르는 지명이지만 석교리의 월포에는 그런 지형이 없다.

순월포는 바다를 끼고 있는 마을 형태가 반달 모양과 같이 생겼다하여 순월개로 불러오다 월포로 개명되었다. 처음에는 석교가 있었던 바닷가를 다릿개 월포라 불렀고 두곡마을 쪽은 순월포라 불러 양쪽이 다르게 불리다가 석교리에 통합되었다.

순월포는 열흘 순(旬) 달 월(月) 개 포(浦)자를 쓴다. 순은 상순, 중순, 하순처럼 열흘이나 한 달의 기간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해안선이 반달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언제부터 열흘 순(旬)자로 바뀌면서 해변이 반달이 되었지만 해변을 반달 모양으로 정비를 하고 개명을 한 것으로 보인다.

200년 전 기록에는 순월포는 순할 순(順) 달 월(月) 개 포(浦)자를 쓴다 한자를 그대로 풀면 순한 달개가 되지만 음을 빌려 왔다면 순월개, 수널개가 된다. 수널은 버선의 발등을 꿰맨 솔기를 말하는 수눅의 사투리로 생긴 모양을 보면 달의 일부분과 비슷하다. 해안선을 돌아가는 갈의 모양을 볼 때 경지정리나 간척사업을 하기 전의 갯벌의 생김새는 버선을 닮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순(順)자는 이어지다, 마주하다 등의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어 월포에 이어지거나 마주하는 개일 수도 있다. 근처에 우고개보(牛古介堡)가 있어 앵강만으로 들어오는 왜적을 막는 역할과 목장에서 키우는 소나 말이 넘어가는 것을 막는 역할을 같이 했다면 소가 넘어가는 포구일 수도 있다. 

숙호리는 옛날에는 쑥골이라 불리다가 뒷산 굴에 호랑이가 살았다 하여 이름 지었다는 설과 지형이 호랑이가 잠을 자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잘 숙(宿) 호랑이 호(虎) 자를 따서 숙호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숙호리라는 지명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지명이 아니며 바로 옆에는 군이 주둔하는 평산포가 있어 호랑이가 짐승을 잡아먹거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면 와전 된 것으로 보인다. 

숙호는 쑥골의 쑥과 불무개고랑, 가장골 고랑 사이에 있는 마을이기에 고랑을 합하여 쑥고랑 마을이었으며 후에 한자로 옮길 때 소리를 빌려 지은 것으로 보인다. 마을에 있는 범애골도 강화도에 있는 사자발쑥과 같이 호랑이 쑥골이라는 뜻으로 범 호(虎) 쑥 애(艾) 골 곡(谷)자로 옮길 수 있다. 전국에 있는 쑥골의 지명 유래는 쑥이 많은 곳, 숯골, 물이 많은 수골, 나무가 무성한 숲골, 곡식 쉬(벼)가 많은 곳이라는 하였으며 큰 골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민속에는 쑥으로 만든 호랑이(애호,艾虎) 풍속이 있다. 단오에 여자들이 쑥으로 호랑이 형상을 만들어 머리에 이면 악귀(惡鬼)를 물리친다 하여 만들어 사용한 것에서 유래한다. 또한 궁중에서는 이날 제호탕(醍醐湯) 옥추단(玉樞丹) 애호(艾虎 쑥호랑이) 단오부채 등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하사하기도 하였다. 

숙호리 앞 바다에는 석방렴이 있다. 폭 50m 둘레 200m를 돌로 담을 쌓아 만들었기 때문에 한자어로 석방렴(石防簾)이라고 하며 석전(石箭) 또는 석제(石堤)라 한다. 지역에 따라 돌발, 독살, 독장, 쑤기담이라고도 부르고 제주도에서는 원담이라 부른다. 주로 경상도·전라도와 서해안에서 연안에 서식하거나 회유하는 잡어를 잡기 위하여 설치하였으며 주로 해안선이 안으로 둘어간 곳을 골라 반원형이나 ㄷ자형의 돌담을 쌓아 만들었다. 

밀물 때에 돌담 안으로 조수와 함께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에 돌담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고 얕은 물에 놀게 되면 뜰망(쪽대)로 떠서 잡는 것이다. 돌담의 밑 부분에 구멍을 뚫고 통발을 넣어 두었다가 그 속에든 고기를 잡기도 한다. 돌담의 폭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규모가 큰 곳은 돌담 위로 걸어 다닐 수가 있고 작은 것은 폭이 넓은 돌을 한 줄로 쌓기도 하였다.

독살을 쌓을 때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족 모두 동원되기도 하고 날품을 사기도 한다. 또한 완성 후에도 1년에 2~3차례씩 파도에 허물어진 곳을 보수해주어야 한다. 근래에는 물고기가 잡히지 않고 보수 관리에 많은 어려움 때문에 점점 훼손되어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제주도와 최대 밀집지역인 태안반도 등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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