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흔치 않은 이야기이지만, 60년대에서 70년대 살았던 분들에게는 연필에 담긴 소담한 추억을 잊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당시는 농경시대에서 산업화 초기로 이어지는 시기라 여러 가지로 변화의 기류가 형성되는 시점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5일 장인데 장이 설 때면 갖가지 새로운 물건들이 많이 나와 구경하던 재미에 흠뻑 빠지곤 하였습니다. 어떤 물건이든지 기존의 것을 능가하는 전혀 새로운 물건은 그야말로 호기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특히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이 있었다면 연필이었습니다. 먹과 벼루, 붓으로 통용될 당시의 분위기에서 연필은 그야말로 최고의 필기구였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 만하였습니다. 그때는 가방 대신에 허리춤에 책 보따리 매고 학교 가던 시절이어서 빈번한 학용품조차 신문지에 둘둘 말은 연필과 지우개가 정말 귀하디귀한 필기구로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글을 쓰다 연필심이 희미해질 요령이면 서너 번 침을 묻혀야 글이 또렷해지는데, 그때 느낀 묘한 기분 하며 몽땅 연필 아끼려 애지중지하던 마음들은 여전히 가슴에 남아도는 추억이기도 합니다. 당시 구슬치기와 함께 몽탕 연필 따먹기 같은 놀이에도 심취한 것을 생각하면 연필은 필기도구로서도 그렇고 흥미를 유발할 학창시절의 가장 소중한 도구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런 시절을 생각하면 요즈음도 연필이 나오기는 하지만, 연필이 필수였던 그 시기에 비하면 그다지 호응도가 높지 않은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한때는 볼펜이나 만년필 등의 필기구가 인기가 높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연필만큼의 감성이 있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연필심과 잉크에서 품기는 정서가 다를 뿐만 아니라, 감성을 달구는 정도에서도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대를 겪고 나니 요즈음 같이 인터넷 정보가 발달한 오늘에는 손으로 글을 쓸 기회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연필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라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입니다. 그만큼 연필을 쓰는 경우가 없어졌음을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점점 고갈되어가는 인간애(人間愛)를 생각하면 연필이 갖는 상징성이야말로 인간의 정서를 대변할 가장 아름다운 필기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연필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인위적이고 가식적이며 욕망 충족의 시대로 변하여 가고 있다는 증거인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필자는 이런 시대에 대응하는 요건으로 연필을 다시 써보는 시대를 열어 보면 어떨까라고 주장해 봅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배경에는 연필의 시작은 나무였다는 점, 그리고 그 나무는 숲 전체와 공유하며 흙의 변용, 햇살과 광합성, 물의 변천과 응용으로 기적을 일으키며 용도에 따라 종국에는 연필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소담한 연필 한 자루이지만, 거기에는 자연 전체의 원대한 기상과 상생 조화의 질서가 스며있다는 것을 실감해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다 연필의 모체인 나무의 삶과 그 결을 직접 느껴보는 시간을 통하여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연필이야말로 인간애(人間愛)를 담아낼 가장 소중한 필기구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연필의 기상도 시대의 상황으로 인해 피안의 숨결이 그쳐졌다고 해도 옛 숨결을 의식할 마음은 여전히 우리의 가슴에 통한다는 점, 그리고 글을 씀으로서 창의성과 감성을 일으키기가 더욱 용이하다는 점에 주목해봅니다. 이런 감성에다 내면에 잠재된 뜻을 나타내는데, 연필만큼 사람의 심정과 일치하는 재료가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하면 아무리 고급 필기구라 하여도 연필에는 미치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고 다른 필기구가 못하다는 것이 아니라, 지(智)와 체(體)와 용(用)이 함께 통용될 필기구로서 연필만 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시각과 촉각으로 감지하며 하나의 글을 쓰는 데 다섯 손가락 모두 협력하지 않으면 예의 그 아름다운 글이 어디에서 나올 것이며, 세간의 심금을 울릴 문장 또한 어떻게 도출해 낼 수 있겠느냐는 점에서 연필은 과거로의 희귀라는 측면보다 어쩌면 인간에게 내재한 본래의 마음을 찾는 길에 가장 유의미한 도구인지도 모릅니다. 

여기에다 한때 연필을 주제로 한 노래 가사는 연필의 진면모를 느끼게 해주는 감성으로 세간의 이목을 이끄는데 한몫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응용한 노래 가사에서 “꿈으로 가득 찬 설레이는 이 가슴에 사랑을 쓸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사랑을 써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라는 가사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하는 것이 틀리면 지우개로 지울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쓴다는 것이 보편적인 인간의 노작 활동이라면, 이것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동물이 가질 수 없는 엄청난 장점입니다. 사랑을 쓰다가 잘못되면 지울 수 있다는 이 의미를 가슴에 두고 그 무엇을 상대에게 전하는 와중에 틀린 것을 지우고 수정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가장 인간애적인 발로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무엇을 지울 수 있다는 결기는 곧 뉘우침과 바로잡음인데 나를 보며 나를 지워나간다는 것에서 이미 습관화되어 고치기 어려운 성격, 감정, 생각 등을 지우개로 지워 본래의 나로 회복할 노정이라면 이 이상 더 의미 있는 행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만약 이 지움의 철학을 우리의 마음에도 응용해 본다면 나를 찾는 여정에서 가장 가치 있는 철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해가 가기 전, 또 새해를 맞으면서 나는 무엇을 지우고 무엇을 써넣을까를 생각하면서 실행의 의지를 밝힌다면 한층 의미 있는 명상이 되리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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