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남해의 보물은 자라나는 아이들에서부터 지금까지 이곳을 묵묵히 지켜온 우리네 아버지며 어머니입니다. 본지는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소박한 이웃들의 진솔한 모습을 소개하는 ‘보물섬 우리이웃’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내가 사서 주는 것도 아니고, 단지 배달하는 것뿐인데… 다들 고맙다고 인사하는 한 마디에 피곤이 싹 가신다”는 박두모 옹.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무려 30.8%에 달하는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우리 지역, 앞으로 10년 후에는 이들 노인들이 남해인구 절반을 차지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세간의 관심사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생산인구는 갈수록 감소하고 자녀들의 부모 부양 부담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회문제 발생에도 불구하고 한치의 걱정도 없이 노후를 개척해나가고 있는 건강한 노인이 있어 주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 주인공은 설천면 진목마을 신촌부락박두모 어르신이다.

얼핏보면 작은 체구에 검은색 머리 때문에 70대 젊은(?) 오빠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올해로 벌써 여든 다섯에 접어든 노인이다.

“얼매나 좋은고, 일 한다는 게…내가 나이에 비해 젊게 사는 비결이제”라며 털털 웃음을 보이는 박두모 옹.

박 옹은 지난 1월부터 노인일자리사업 중 복지형태인 ‘안전확인 징검다리’사업에 참여하면서 혼자 사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요구르트 배달을 시작했다. 그의 임무는 일 주일에 두 세 번씩 내곡부터 문항마을까지 십 리 정도 되는 거리를 오토바이를 타고 오가며 13가구에 요구르트를 배달하고 그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안부를 묻는 일이다.

“기동성이 있고 건강한 60세 이상 노인이면 누구나 일자리 참여가 가능하다는 이장의 안내방송을 듣고 곧바로 새로운 일에 도전장을 내밀게 됐다”는 박 옹. 지난해까지만 해도 농업기반공사 소속의 저수지 관리인으로 일해온 그는 농사일을 해가며 짬짬이 부업거리도 찾아내어 일에 있어선 욕심도 많고 젊은이 못지 않은 체력도 가진 노인이다.

주위에선 번듯하게 지어진 주택에, 갖가지 고급 가전제품에, 넉넉한 용돈에, 잘 사는 자식들에 남부럽지 않게 살만한 사람이 사서 고생한다고들 하지만 박 옹은 보수의 액수에 상관없이 자신의 일을 가진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자신한다. 그가 한 달 중 12일을 일 하고 받는 임금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고작 20만원이다.

“어려서 고생 많았던 자식들이 다 잘 풀려 웬만큼 산다네. 그래서 두 노인네 늙어 생활하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네. 아마 자식들이 알면 당장 그만두라고 할 테지. 그렇다고 못하면 없던 병이 생겨 앓아 누울 것이 뻔해. 하찮은 일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내 몸이 건강해서 하는 일을 누가 말려. 내가 사서 주는 것도 아니고 단지 배달꾼 역할만 하는 것뿐인데 다들 고맙다고 인사하는 한 마디에 피곤도 싹 가시고 보람도 크다”라고.

박 옹의 아내인 정선애(78) 할머니도 “아파서 누워 있는 것보다 낫제. 저 양반은 일 하는 게 적자네. 버는 것보다 인심 베푸는 게 더 많으니께. 자기 몸 건강하고 좋아서 하는 일, 부지런한 탓이지”라며 인정하고 늘 한 마디 거든다. ‘조심시리 댕기오소’

박 옹은 요구르트 배달차가 오고 가면 바로 출발 준비에 들어간다. 여름엔 혹시나 상하지 않을까 싶어서, 어떨 땐 그 혼자 사는 노인 양반들이 궁금해서 얼른 집을 나선다.

“내만 좋은 게 아니고 요구르트를 받는 노인네들도 내가 부담이 없고 편한 가 봐. 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공감해서 그런지 내 오기만을 기다리는 이들도 있다네”라고 자랑을 내놓는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내곡마을 박금녀(83) 할머니는 박 옹이 들어서자마자 얼른 일어나 맞는다. 두 손을 꼭 잡으며 “더운데 고생 많다. 고맙다”고. 또 마을 그늘 아래 모인 주민들도 소주 한 잔 하고 가라며 야단이다.

“이런 게 사람 사는 맛이고 인생의 즐거움 아닌갚라고 던지는 그 말 한 마디에 지난 날 일본에서 자식들 키우며 고생했던 일, 귀국 후에 사기 당해 전 재산 다 날린 일 등 힘겹게 지나온 박 옹의 인생 여정이 다 묻어 있는 듯 하다.

취재를 마치고 나서는 기자를 향해 박 옹은 “노인들도 기회만 제공된다면 일을 통해, 봉사를 통해 사회의 짐이 아니라 사회의 주인공으로 대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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