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남해문화원 지역사연구소 학술 포럼이 지난달 24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제5회 남해문화원 지역사연구소 학술 포럼이 지난달 24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남해문화원(원장 하미자)은 지난달 24일 남해유배문학관 다목적 강당에서 「제5회 남해문화원 지역사연구소 학술 포럼」을 개최했다. 

남해문화원 지역사연구소가 주최·주관하고 남해군이 후원한 가운데 열린 이번 포럼에는 하미자 남해문화원장, 남해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김환용 회장 등 내빈들과 문화원·남해동학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남해 동학의 역사적 의의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포럼은 한관호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위원이 사회를 맡은 가운데 ▲영산대학교 심상교양대학 손봉구 교수의 ‘동학의 창도와 계승’ ▲동의대 역사인문교양학부 성강현 교수의 ‘남해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주제의 발제에 이어 박성석 남해문화원 지역사연구소장을 좌장으로 하고 정문열 인문학당 강명재 대표와 권성계 남해고 역사 교사가 토론자로 참가했다.  

동학과 남해문화의 정체성

손봉구 교수는 이날 ‘남해문화의 정체성’이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1860년 동학을 창도한 교조 수운 최제운 선생이 성도하고 1861년부터 주문과 영부를 갖고 세상에 가르침을 펴기 시작한 과정을 설명한 후 동학교의 핵심 사상과 주문수련법, 3.1운동과의 관계, 천도교로의 개명 등 역사적인 과정을 개괄했다. 

또 손 교수는 동학이 남해군에 전파된 과정과 동학의 주요 인물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손 교수에 따르면 고현면 이어리 출생인 중암 정재모 선생이 3.1운동 시기를 맞아 독립운동을 펼치면서 천도교(동학)에 입교한 후 초대 종리원장으로서 천도교를 알리는 포덕활동을 펼쳐 남해 천도교의 토대를 마련했다. 또 고현면 포상리 천동마을 출신인 회암 하준천 선생은 17세에 천도교에 입교해 활동하면서 천도교 남해전교실을 창립하고 3.1운동에 참여하는 등 광복운동을 펼쳤다. 

아울러 남해 천도교 활동 인물로 추암 이천운 선생과 우암 김명진 선생, 정암 고정훈 선생 등을 소개하면서 이들의 왕성한 활동으로 남해군이 천도교 왕국이 된 배경과 경위를 설명했다. 

손 교수는 남해군을 포함한 동학(천도교)의 사업과 활동이 역사적으로 남해 3.1만세운동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추후 남해의 독립운동과 어떻게 조응하며 발전해 왔는지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해와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이어 성강현 교수는 다음 발제에서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전개와 연관된 ‘남해의 동학 수용’ 과정을 설명했다. 성 교수는 지금까지 남해에 동학을 최초로 유입한 것으로 알려졌던 여장협 선생보다 이른 시기에 남면 선구리의 구정 김성재 선생이 처음으로 동학을 남해군에 알렸다고 주장했다. 김성재 선생은 동학 혁명군에 가담해 당시 하동 고성산전투에 참전했다고 한다. 계속해서 여장협, 정용태, 박용필, 김일문, 김성준 선생이 동학 입도 후 활동을 펼친 내용을 소개했다. 

성 교수는 남해군의 천도교 세력의 형성과 동학농민혁명 참여 과정을 살피면서 “이러한 남해 동학의 힘은 일제 강점기 남해를 동학의 후신인 천도교의 성지로 만드는 기반이 되었다”며 “동학과 동학농민혁명 활동을 통한 남해의 정신은 항일과 충절을 빛낸 역사적 사건이다. 따라서 우리 역사의 자주적 근대화를 추구했던 동학의 가치를 품은 남해 동학과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한 안내문, 시설물을 정비해 남해의 정신으로 꽃피울 수 있는 다양한 후속사업의 진행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남해동학의 역사적 의의와 관련해 영산대 손봉구 교수와 동의대 성강현 교수, 정문열 인문학당 강명재 대표, 권성계 남해고 역사 교사가 박성석 남해문화원 지역사연구소장의 사회로 토론회를 진행하면서 남해 동학의 역사적 가치 규명과 남해 정신의 의의, 오늘날 천도교와 남해 정신의 연계 및 정신문화 계승과 생활화·실천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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