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과 전남 여수시는 그동안 바다를 통해 많은 교류가 있었고, 향후 해저터널을 통해 밀접하게 엮일 지역이다. 많은 남해인들이 예전부터 여수로 이주해 수산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지난달 화전문화제에 참가한 기자에게 하정운 전 여수시남해향우회장이 여수에 살고 있는 남해인들을 취재해달라고 요청했다. 첫 취재는 하정운(70) 선하수산 대표 본인으로 정해졌다. 

지난 9일 KTX를 타고 여수로 향했다. 하정운 대표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하정운 대표는 여수시 잠수기수협에서 40년 이상을 활동했고, 현재 선하수산 대표이자 잠수기수협 지정 중매인 17호로 활동하며 여수수산시장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다. 잠수기선 우경호(6.7톤)를 운영하고 있으며, 수협 중매인회장, 여수수산시장 이사(5회), 여수시남해향우회장(5번)을 역임했다. 

하정운 대표는 1953년 남면 우형마을에서 고(故) 하재만·김동영 부부의 3남4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남명초등학교와 해성중학교(19회)를 졸업하고, 해성고는 2학년 때 중퇴했다. 육군으로 제대 후 본격적으로 잠수기어업을 시작했다. 잠수기어업에서 40년 이상 잔뼈가 굵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선하수산은 주로 어떤 수산물을 취급하나

잠수기수협 17호 중매인으로 바닷속 어패류를 모두 취급하고 있다. 키조개, 대합, 홍합, 바지락, 해삼, 멍게 등을 도·소매를 하고 있다.

▲직접 잠수기어업을 하시나? 잠수기어업에 뛰어든 계기는 무엇인가

군에 가기 전 세관에서 잠수기 일을 하였는데 그때 잠수기 기술을 익혀 제대 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계기로 남해에서 여수까지 어패류를 취급하고 있다. 지금은 우경호 선주로서 배만 운영하고 있으며 잠수기수협 중매인으로 일하고 있다. 잠수기어업은 특수훈련을 통해서 숙달된 사람이 물속 약 15~40m에서 고도의 기술로 작업하는 어려운 어업이다. 기술이 없으면 생명의 위험도 뒤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잠수기어업을 했다.

▲잠수기어업의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남해대교에서 가천마을, 전라남도까지 구역인데 지금 온도 상승으로 어패류가 많이 줄었다. 잡아도 죽은 것이 많이 나온다. 2월은 북서풍이 불어서 어업이 어렵다. 지금은 새조개 채취를 하고 있다. 어패류는 12월부터 6월까지가 성수기이다. 잠수기수협은 지구별 수협이 아닌 업종별 수협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돌을 뚫는 강한 의지로 정성을 다하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금석위계’의 정신으로 거센 파도를 헤치며 열심히 앞만 보고 일했다.

▲잠수기어업을 하면서 잘 나갈 때 이야기를 해달라. 한창때 소득이 얼마나 됐나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30년 전에 하루에 900만 원의 순수익을 올렸다. 그래서 우경호를 구입했다. 잠수기수협은 배를 가져야 인정도 받고 일을 능률적으로 할 수 있다. 

▲남해향우회 회장도 여러 번 하셨는데 여수에서 남해 분들은 주로 무엇을 하며 사나

잠수기어업에 종사하는 어업인들이 많은데 배를 가지고 있는 어업인이 여수시에서 52명 정도이다. 그 중 남해인들이 28척을 가질 정도로 열성적으로 일했다. 그런데 지금은 남해인의 배가 11척 정도뿐이다. 돈을 벌어 서울로 이사하고, 고향에도 갔지만 대부분 여수시에서 여수인들과 상호협조하며 어우러져 잘살고 있다.

▲여수에서도 남해사람들은 생활력이 강한가

남해인들은 책임감이 강하고 부지런하다. 늘 노력하며 환경적응력이 뛰어난 것 같다. 여수가 텃새가 대단했지만 이겨내고 모두 성공했다. 여수 시민들에게 이기려고 하면 살기가 힘들다. 양보하고 베풀면 된다. 40년 이상 여수 잠수기수협에서 활동한 관계로 여수수산시장에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여수시 남해향우회는 언제 설립됐고, 회원은 얼마나 되나

청년이던 1973년에 향우회에 나갔는데 25명 정도였다. 고향 선배들이 총무를 맡아 보라고 하여 12년 동안 총무를 하면서 온 힘을 다하여 향우회를 활성화시켰는데 60여 명이 참석했다, 그 당시 여수시에서 고위직에 근무하는 남해인들이 많았다. 회장을 5번이나 역임하면서 투철한 애향심을 가지고 향우들을 위해 많이 베풀었다. 회원 60여 명이 고향사람끼리 시기 질투도 있었지만 지금은 친하게 지내며 65세 이상은 회비를 받지 않는다. 여수시 남해향우회에서 남해군에 태풍피해를 입었을 때도 많은 물품을 전달하기도 했고, 군청 벽시계도 협찬했다.

▲여수에서 경상도 사람이라고 차별받지는 않았나

여수시에 살면서 지역간 갈등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여수시 조폭들에게 당하기도 했지만 남해인의 강한 긍지로 버티었다. 그들에게 양보하고,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것을 택했다. 지금은 세상이 달라져 여수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 청년시절 성공해 주위의 시샘이 많아 괴로울 때도 있었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게 ‘내 인생을 불도저처럼 밀고 가자’란 생각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 그래서 타향에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았다.

▲지금도 잠수기를 하시나? 사업을 어떻게 운영하시나

지금은 선하수산 대표이자 잠수기수협 지정중매인 17호로 각종 어패류 도소매를 하면서 우경호 선주로 일하고 있다.

▲고향에 대한 추억은

젊은 시절 동네 처녀총각들이랑 큰아버지 경운기를 몰래 타고 가설극장에 가고, 여름이면 월포해수욕장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놀았던 일, 교회 청년부에서 설교했던 일 등이 생각난다.

▲고향에는 친인척이 있나 

친인척과 사촌이 많다. 그래서 매달 한두 번씩 고향에 가고 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고향에서 살고 싶어서 우형마을에 집을 건축할 계획이다.

하정운 대표는 정미선 씨와 결혼해 2남1녀를 두었다. 장남 경준 씨는 부산에서 회사에 다닌다. 차남은 영롱 씨는 ‘여수왕자 조개구이’를 운영하고 있고, 장녀 우림 씨는 가정주부로 순천에 살고 있다. 자녀들은 “오랜 세월 거친 바다에 젊음을 던져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신 아버지께 항상 감사하고 존경한다”는 마음을 말했다. 

차남이 운영하는 여수왕자 조개구이는 해녀와 전문 다이버가 직접 잡은 싱싱한 해산물만 취급하고 있어 여수 맛집으로 통한다. 하정운 대표의 아내 정미선 씨는 복지회관에서 매월 봉사하고 있고, 하정운 대표 또한 여수의 각종 단체에서 받은 감사패와 공로패가 수두룩하다. 

하 대표는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희생과 헌신이라고 말한다. 40년 동안 여수잠수기수협의 일등 공신으로 신화를 남기고 여수시 남해향우회의 화합을 의해 헌신봉사한 하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뿌듯한 마음으로 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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