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가을빛이 고운 때에는 삶의 피로가 많더라도 계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느새, 가을이 깊었구나 싶은 것이다. 바람이 차가워지고, 나뭇잎이 물들고, 낙엽이 지고, 또 유난히 푸른 하늘을 보거나 가을비 내리는 날에는 더 계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023년 남은 달력도 겨우 두 장뿐. 가을이라 그런지 점점 잊혀져가는 풍경이 눈에 밟히는 느낌이다.

얼마 전에 지나갔던 명절, 추석에도 10명 중 6명꼴로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응답한 최근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드러나듯 한복을 차려 입고, 정성껏 음식을 내고, 추석 선물을 들고 동네 골목마다 오가는 사람도 많던 때가 분명 있기는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모습이 사라진지 오래된 느낌이다. 수도권에서 한꺼번에 고향으로 우르르 내려갔다 올라오는 예전의 정형화된 뉴스와는 달리 귀성길과 귀경길이 막히고, 게다가 연휴에 가족과 함께 국내 관광지로 추석을 보내는 일종의 새로운 형태의 휴가라고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어릴 때는 동네 이발소에서 까까머리를 했는데 그 이발소가 동네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라서 읍 이발소에서 이발을 해 왔다. 어릴적에는 그 이발비도 아깝다고 아버지는 바리깡이라고 하던 재래식 이발기와 집에 있는 가위로 나와 우리 동생들의 머리를 깎아 주셨다. 이발 기계가 낡고 잘 깎이지 않아 제발 아프지 않았으면 했지만, 어김없이 머리칼이 뽑혀 눈물을 찔끔거렸다. 

중학교 입학 후는 조금 폼나게 했으면 하는 마음에 삼색등이 돌아가는 읍내 이발관에 가서 조금 더 길게 깎는 기구로 2부로 깎았다. 귀 옆과 목덜미에 솔로 비눗물을 묻혀 바른 다음 가죽 피대에 날을 세운 면도기로 다듬어 주었다. 늦가을에 해주는 면도가 참 걱정스러웠다. 차가운 비눗물을 목뒤에 바르는 것이 싫어 나도 모르게 거북목처럼 움츠러들었다. 어린아이들은 널빤지를 이발 의자에 걸치고 그 위에 앉혀 머리를 깎았다.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는 유행가가 흘러나왔던 그 시절이다.

5년 전부터는 이발소가 아닌 미용실로 머리를 자르러 간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읍 친구가게 옆에 있는 미용실이 있다. 5년이란 긴 시간동안 이용을 해 왔는데도 미용실에 가게 되면 파마나 염색하는 여자 손님들이 있어 기다리기도 해야 하고 아직도 남자가 미용실에 간다는 것, 그리고 혼자 뻘쭘하게 앉아 있는 것이 쑥스러워 조금 한가한 오후 늦게 거의 마감할 시점에 주로 들린다. 오후 5시 정도면 여자 손님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여자손님들은 머리손질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그 시간에 가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5년 전 미용실에 처음 갈 때는 쑥스럽기도 하고 창피해서 손님이 있는지 없는지 전화로 몇 번이나 확인하고 찾아갔었고 당시 미용실 옆가게의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다 깎을 때까지 기다려 주라고 부탁하고 그 친구가 옆에 앉아 있으니 엄마 손 잡고 읍장날에 가는 것처럼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  

예전에는 남자가 미용실에서 이발하고 파마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는데 동네마다 있던 이발관이 다 사라지고 미용실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자연스러워졌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듯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많은 것에 있어서 사라지고 대체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점점 잊혀져가는 풍경이 눈에 밟히는 느낌이다. 

성균관이 리서치뷰에 의뢰해 1천5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5.9%가 앞으로 조상의 제사까지도 지낼 계획이 없다고 반응한 것과 마찬가지로 추석의 분위기도 매년 더 빨리 바뀌어 가고, 주위의 익숙했던 것들이 하나 둘 사라져가는 느낌이어서 이 가을의 쓸쓸함이 더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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