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신록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 가을로 이어지는 미묘한 변화도 길을 따라 흘러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는 길, 그 내밀한 정서에서 길은 마음을 밝히는 유무형의 등불이면서 문명의 이동을 용이하게 하는 길라잡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길을 추인할 내면의 길 또한, 마음이 교차 순환하는 가운데에서 끊임없이 인간의 의식을 고조시키는 흔적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철학으로도 길은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중심축으로 그 참신성이 항상 이 순간의 길로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않습니다. 이 순간이 주는 의미, 최초와 시작의 의미로 되새김질하며 그 의미를 마치 세상에 태어나 처음 걸을 때의 길로서 연상해봅니다. 그 길의 연원에서 옛날 어린 시절, 어머니 손 잡고 걸음마, 걸음마 외침 따라 처음 디뎌본 길, 그리고 처음 걸어 본 걸음이 그처럼 경이롭고 신비스러웠던 기억은 내내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그때의 기억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오늘 그리고 이 순간, 어느 길이든 걷고 있을 이 길 역시 새롭고 신선하고 경이로운 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때의 느낌을 아로새기며 가을이 다가오는 이때쯤이면 수년 전 경험한 길에 얽힌 이야기가 여전히 필자의 가슴을 감동케 합니다. 

그때가 언제였든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해 가을, 막 단풍이 하나둘씩 떨어져 가는 양산 내원사 산행의 길을 걷던 차였습니다. 마침 우연히 같은 시각, 필자의 시선이 머문 저만치서 사뿐히 걸어오시는 스님의 고운 자태가 마치 한편의 드라마처럼 고즈늑한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걷는 길의 추임새가 곧은 데다 약간은 휘어진 곡선 길을 사뿐히 걸어오시는 모습은 마치 주변의 산수(山水)를 모두 거느리고 하늘과 땅과 길을 하나로 잇게 할 정도로 감동을 자아내는 그런 행보였습니다. 

고요에 물든 산야에 단 한 사람의 왕래도 없이 고요가 감도는 곳, 그 어떤 말이나 글로서도 표현할 수 없는 절정에 이른 고요함에 심취된 필자로서는 그때의 그 장면에 정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가는 길, 수직과 수평이 맞닿은 지점에 이른 필자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가벼이 목례를 합니다. 말 없는 가운데에서 마음이 통하듯이 스님 역시 조용히 두 손 모아 합장하며 그윽한 눈길로 인사를 나누는데, 그 성정이 어찌 다를 바 있겠습니까? 마음으로 하나 된 자연한 길에 구차한 말 많음도 없고 헛된 욕망도 부질없는 욕심도 사라진 무언의 만남, 모든 진심이 오가는 길에 모든 현상이 하나로 연결된 소리 없는 가르침이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고요가 주는 그 길, 아늑한 정경과 가을의 정취가 조화를 이룬 그 길에서의 만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월이 흘렀어도 길은 변치 않지만, 그때의 순행에 비하면 요즈음의 길은 무게감이나 정숙도나 품격에서 예전의 아늑함을 찾을 수 없는 그런 길은 아닌지 돌아보게 합니다. 아니 어쩌면 길은 열려 있지만, 길을 맞이하는 마음 길이 매매 사사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면 그처럼 품격 있는 길을 기대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걷느냐에 따라 길의 품격이 달라지니 말입니다. 

혹자는 이런 글을 보면 아니 길을 걷는데 어제 걸었던 길은 무엇이고, 오늘 걸을 길은 또 무엇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라도 다리가 있기에 걸으면 그만이지, 걷는 길에도 품격을 두어야 하느냐고. 맞습니다,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길이지요. 하지만, 또한 누구도 걸을 수 없는 길이기도 합니다. 왜냐구요. 묵직한 땅의 질감은 말이 없고, 길 사이를 가로지르는 공기는 유속의 흐름에 맞는 사람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유속의 흐름에 맞는 사람, 이는 거슬리지 않고 치우치지 않으며, 모나지 않고 누구에게나 겸손하며 몸과 마음이 가벼운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다가오면 길은 한없이 반길 것입니다. 욕망이 엄습하고 습관의 마음이 몸 전체를 감싸 안은 사람은 그 무게로 인하여 길이 제대로 지탱을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멀고도 가까운 길, 그 행보를 거리로써 측정할 것이 아니라, 번복지심 두게 되는 마음의 이탈 행위를 누구보다도 감지할 길이기에 그래서 길을 걷는 순간 마음 상한 자, 분노와 욕심에 일그러진 자 그 누가 감히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이런 정도(正道)의 길에서 우리가 만날 정녕 걸을 자격이 있는 자는 누구여야 하겠습니까? 이미 걸으려 발걸음을 내디디는 순간, 하늘이 그렇듯 길 역시 이미 그 사람의 마음가짐을 훤히 꿰뚫고 있을 것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아가야 하듯이 길 역시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가벼운 마음이라야 걸을 자격이 있다는 말을 새겨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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