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정인자 씨와 조영민 향우
아내 정인자 씨와 조영민 향우

전남 여수시 제3·4구 잠수기수협에서 50년을 조합원으로 일하고 퇴임한 조영민 향우를 지인의 소개로 지난 15일 만났다. 인터뷰는 조 향우의 차녀 진화 씨의 서울 상도역 부근 자택에서 진행됐다. 인사를 나눈 후 잠수기수협 50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조영민(68) 향우는 1956년 5월 25일 남해군 남면 가천 다랭이마을에서 4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조경태(93) 씨는 가천마을에 살고 있고, 어머니 유복엽 씨는 돌아가셨다.

그는 가천초등학교와 해성중학교(22회)를 졸업하고, 여수 잠수기수협에서 일하기 위해 여수에 살고 있던 친척집으로 갔다. 청소년기에 잠수기어업에 투신한 후 만 19세가 되었을 때인 1977년에는 19세의 젊은 나이에 많은 어획량을 획득하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9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24세 때는 이모부인 김준세(남면 덕월) 씨와 동업해 배를 구입했다. 여수잠수기수협 조합원의 90%가 남해 출신인 시절이었다. 자수성가해 24세에 주택도 마련했다. 조합원 50여 명 중 수확량이 단연 1등이었고, 이후 40년 동안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주위에서 TV프로그램인 성공시대나 인간극장에 나가보라고 할 정도였고, 실제로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현재까지 경영하고 있는 잠수기선 상진호진수식
현재까지 경영하고 있는 잠수기선 상진호진수식

어린 나이에 성공해 주위의 시샘이 많아 괴로울 때도 있었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게 “내 인생을 불도저처럼 밀고가자”란 생각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어업인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잠수기수협은 지구별 수협이 아닌 업종별 수협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어획물이 물고기가 아니고 어패류, 즉 키조개, 대합, 홍합, 바지락, 해삼, 멍게 등이어서 특수훈련을 통해서 숙달된 사람이 물속 약 15~40m에서 고도의 기술로 작업하는 어려운 어업이며, 기술이 없으면 생명의 위험도 뒤따른다. 그는 돌을 뚫는 강한 의지로 정성을 다하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금석위개의 정신으로 거센 파도를 헤치며 열심히 앞만 보고 일했다.

아내 정인자(65) 여사는 조영민 씨와 살기 위해 부모님 몰래 새벽에 가출해 여수로 와서 살림을 차렸다. 두 사람은 1976년 5월 25일 결혼했다. 조 향우는 “나의 좌우명은 진실한 마음과 정직·성실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라며 “그래서 타향에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았다”고 말했다.

라이온스클럽 제100차 미국 시카고 국제대회 참석
라이온스클럽 제100차 미국 시카고 국제대회 참석

조 향우는 지역에 봉사하기 위해 2003년부터 라이온스 활동을 했다. 2013년 6월에는 국제라이온스협회 355-B3(전남 동부)지구 여수중앙라이온스클럽 제34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당시 취임사에서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희생과 헌신이다. 봉사는 겉으로 보이는 행동과 미소가 아닌 조건 없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됨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여 년간 사랑과 나눔의 기쁨을 만끽하며 아름다운 봉사를 이어왔다. 그런 그를 아내 정인자 씨가 성심을 다해 보필했다.

그는 여수에서 2005년 제3·4구잠수기수협 감사, 2008~2022년 제3·4구잠수기수협 이사, 2013년 여수중앙라이온스클럽 34대 회장, 2015년 여수지구라이온스 지역부총재, 2018년 전남대 제9기 수산경영자과정 수료, 2018년 전남대 제9기 수산경영자과정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이 같은 활동으로 2018년 전남도지사표창, 2017년 여수시장표창, 2017년 여수시 김성곤 국회의원 표창, 1977~2021년 제3·4구잠수기수협 생산최우수상 43회 수상했다.

50년간 여수잠수기수협에서 활동한 관계로 그는 여수의 어업인 사이에 이름이 났다. 주위에서 지난해 잠수기수협 조합장에 출마하라는 권유가 있었지만 일신상의 이유로 포기했다.

조영민 향우는 23세 때 고향마을에 부모님 집을 지어 드렸다. 지금도 고향을 방문할 때면 마을 어르신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있어 마을에서는 효성이 지극하다고 소문나 있다.

조영민·정인자 부부는 1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 성화 군은 연세대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증권회사에 재직중이며 장녀 소현 씨는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차녀 진화 씨는 박사과정을 수료해 현재 분당에서 무용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손주들도 6명을 두었다. 

장남 조성화 씨 가족과 함께
장남 조성화 씨 가족과 함께

조 향우는 자녀들에게 “너희가 서울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은 모두 너희 어머니 덕이니 어머니께 효도해야 한다”고 항상 강조한다.

장남 조성화 씨는 “오랜 세월 거친 바다에 젊음을 내던지고 자식들을 위해 평생 희생하신 아버지께 항상 감사하고 존경한다”는 마음을 전했다.

며느리 조민지 씨는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을 본받고 싶고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장손 돈희 군은 “언제나 자상하시고 곁에 있는 것처럼 대화를 많이 하며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신다. 저도 커서 할아버지처럼 맡은 분야에 최고가 되고 싶고 사회에 공헌도 많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 향우는 “현업에서 열심히 일하던 그때가 진정 나의 전성기였고, 그리워진다. 지금 조금 허전함을 느끼지만 제2의 인생을 편안하게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조 향우는 또 “그동안 많은 이해와 사랑으로 나를 내조해 준 아내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다시 태어나도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하겠다”며 미소 지었다.

50년 동안 여수잠수기수협의 일등 공신으로 신화를 남긴 조영민 향우의 이야기를 듣고 뿌듯한 마음으로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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