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진 재경남해군향우회 사무총장
최동진
​​​​​​​재경남해군향우회 사무총장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 산아제한 정책이 한창이던 1950~60년대 생기는 대로 아이를 낳던 시절이 있었다. 한 이불 밑에 고만고만한 형제들은 배 가리고 잠자다 춥다고 동생이 이불 당기면 누나가 또 당기고 하다 보면 설잠 자기가 부지기수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산업화시대의 정점에 있던 시절이라 지금과는 달리 새로운 일자리는 많았다. 소개 소개로 취직하여 형님집, 누나집에 얹혀 서울살이를 시작한다. 고향을 떠나올 때 어머니의 근심어린 당부는 “큰 성공은 못하더라도 쉽게 포기하고 집에 와서는 안된다. 꼭 명심해야 된다”였다. 어머니의 표정에서 간절한 바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반세기 세월이 흘러 그때 어설픈 청년은 어느덧 머리 희끗한 반백의 중년이 되었다. 새로운 미래보다 지나온 여정을 되새김질하며 까마득한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골목길, 갱번가, 산천을 회상한다. 객지살이 떠나는 자식을 향해 손 흔들며 무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던 어머니를 그리며 심한 노스탤지어에 빠지곤 한다.

은퇴하고 노후를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하며 보낼 것인지는 출향 세대의 당면한 과제다. 현재의 생활 터전인 서울에서 거리상으로 가까운 경기, 강윈, 충청권 등 중부권에서 노후생활의 거처를 마련하는 손쉬운 귀촌 설계를 해 봤을 것이다.

저출산과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지방에는 지역소멸의 위기가 오래 전부터 예고되었다. 각 지자체마다 인구 증가 및 유입을 위한 특단을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이제는 향우회가 나서야 할 때다. 40~50년 전 줄지어 도시로 향했던 출향인들의 순조로운 귀향을 돕기 위해 향우회가 디딤돌 역할을 자처해 본다. 재경향우회는 선배 향우들의 선각자적인 노력으로 자가 사무실을 보유한 터라 소규모의 교육강좌나 행사를 자체 소화할 수 있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15기 재경남해군향우회는 지난 3월 28일 ‘문국종호’의 출범과 함께 첫 번째 사업으로 ‘귀향귀촌아카데미 강좌’를 개설했다. 5월 9일 개강식에 이어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귀농귀촌분야 전국 유명 강사의 강좌가 이어지고 수강 향우들은 소중한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4주간 이론 수업을 마치고 귀향에 필요한 실질적인 고향 체험을 위해 수강 향우들과 향우회 임원 등 34명의 재경향우는 상주면 두모마을 남해서울농장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남해 도착 이후 일정을 동선에 따라 간단히 정리해 본다.

△금산 보리암-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올라야 하는 산. 주차장에서 보리암으로 가는 오르막길에서 때 이른 무더위로 구슬땀을 훔치며 나눈 대화 속에서 원로 향우들의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마늘한우축제장-모성애가 왜 위대한지 남해군 홍보대사로 위촉된 가수 하동근의 어머니. 아들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박수 치며 응원하는 모습은 가슴 뭉클한 감동 그 자체로, 참으로 보기 좋았다.

△두모마을-어린 시절 상주해수욕장으로 가는 길 버스 창가로 길 아래 저만치 보였던, 그래서 항상 궁금했던 마을 두모. 두모천, 해변, 맑고 깨끗한 바닷물, 아름다운 바다를 즐기는 텐트족, 250년 수호신으로 묵묵히 마을을 지키고 있는 나이 많은 느티나무, 이 고즈넉한 두모마을 풍경에서 전해오는 분위기는 나의 오랜 궁금증을 해소해 주기에 충분했다. 김승겸 상주면장님, 남해 별난 어부 김동윤 선장님의 따뜻한 환대가 고마웠다. 비록 작은 마을공동체이지만 큰 지도력으로 전국 최고의 마을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가고 있는 손대한 두모마을 이장님의 모습에서 남해인의 저력을 볼 수 있었다.

△수료증 전달-귀향귀촌아카데미 1기 강좌 수강을 마무리하는 수료증 전달을 장충남 군수님께서 직접 해주셨다. 휴일인 토요일 이른 시간임에도 김성근 관광경제국장님, 박정선 정착지원팀장님, 그리고 남해군의 직원분들이 함께했다. 지역 발전을 위해 혼신을 다하는 공직자의 참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관음포 연꽃마을-충무공의 기개와 혼이 살아 쉼쉬는 구국의 땅 이자 새 생명의 기운을 품고 있는 관음포. 일본 침략에 대항하여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백성들, 그 치열했던 전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관음포에 세계평화와 공동번영이라는 미래 지향적 씨앗을 뿌리고 부처님의 자비의 상징인 연꽃으로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한·중·일 화해공원추진위원회 김경곤 회장님의 스토리텔링이 있는 노력을 볼 수 있었다.

△남해대교-남해 인구가 13만명이 넘던 인구 팽창 절정의 시절인 1973년 남해대교가 개통되면서 섬사람들의 도시로 향한 꿈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해졌다. 남해대교를 통해 육지로 향한 행렬은 봇물 터지듯 이어졌고, 50년이 지난 지금 섬의 인구는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4만1000명 선까지 후퇴했다. 뭍으로 나와 경향각처로 뿔뿔이 흩어져 자리잡은 남해인들은 지혜로움과 근면성으로 성공해서 남해를 또다른 이름인 ‘인재의 보물섬’으로 불리도록 하였다.

그들은, 꿈과 이상을 이루기 위해 넘었던 남해대교를 이제 귀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넘어야 할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 수구초심, 오랜 시간 떠나있던 고향 땅으로 가기 위해 귀향귀촌아카데미 수강이라는 첫 삽을 떴으니 이제 귀향의 발걸음을 재촉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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