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대종사 품계를 받은 남해 출신의 석구스님(73, 자은사 주지)을 찾아 제천으로 향했다.

이주성 향우가 6촌 형인 석구스님 인터뷰를 요청한 터였다. 고속버스에서 내려 자은사로 가는 길엔 금계국과 수레국화가 만발했다. 자은사에 들어서자 인자한 모습의 석구 스님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인터뷰를 요청드릴 때 석구스님께서 “자은사는 금계국이 만발한 지금이 제일 아름답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자은사는 금계국 천지였다. 흔히 대웅전이라고 부르는 법당 앞에 ‘큰법당’이라고 한글로 크게 쓰여 있어 연유를 스님께 여쭈었더니 “큰법당이라고 쓴 것은 요즘 세대에 맞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다.

석구스님은 남해군 고현면 성산마을 출신으로 고인이 되신 이재칠·박속녀 부모님의 4남3여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년시절 석구 스님은 “할머니를 따라 처음으로 가 본 절이 설천면 구두산에 있는 보광암이었다. 어릴적 이름은 도호, 호적명은 석호인데 은사이신 혜정스님께서 거북구를 써서 법명을 석구라고 지어주셨다.

먼저 지난 4월 27일 조계종 대종사 품계를 받은 것에 축하인사를 건네자 석구스님은 “오래도록 절에서 지냈다고 대종사 품계를 받은 것 같다”며 미소 지으셨다.

도마초와 남해중을 졸업한 스님은 ‘엿장수를 하면 조선 천지를 다 돌아다닐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열아홉 나이에 돈 오천원을 가지고 가출하여 하동에서 산청과 거창으로, 김천 대덕과 증산으로 근 1년을 엿장수로 전국을 떠돌았다. 그러던 스님이 부처님을 통해서 인생을 다시 세우기로 하고 연고도 없는 법주사로 찾아갔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법주사 혜정스님은 엿장수를 하다 온 그를 따뜻하게 맞이했고, 그는 혜정스님을 은사로 모셨다. 사람은 다 평등하고 사는 데 있어 잘나고 못나고를 구별을 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그때 얻었다고 말한다.

군 제대 후 법주사로 다시 돌아온 스님은 원통보전에서 1년간 관음기도에 정진했다. 군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대 후 집안 사정이 너무 안 좋았다. 장남이 출가했으니 그 다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매일 2,000배씩 관음기도를 바쳤다. 화두를 받기 위해 성철 스님을 찾아갔던 27세의 스님은 그해 겨울 보리암을 찾아 소지공양을 올렸다고 한다.

20년 동안 전국의 암자를 찾아 공부하던 스님은 40대 초반인 30여년 전 천년고찰인 금수산 정방사 주지로 오면서 제천·단양과 인연을 맺었다.

석구스님은 “바닷가에서 태어났지만 바다가 싫어 바다 없는 땅을 찾다 보니 충북으로 왔고, 산세가 수려한 제천에 살게 됐다”며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이 동네를 이제는 떠나지 못할 거 같다”고 말했다.

스님은 1988년 정방사 주지로 부임했다. 여러 절을 다니며 기도를 구하면서도 계속 마음이 가는 제천 금수산꼭대기에 위치한 절이었다. 스님이 주지를 맡아 갔을 땐 전기도, 수도도 없고 차량 진입로 조차 없던 절이었다. 정방사 주지로 와서 두 번째 소지공양을 하고 불사에 매진했다. 그 후 진입도로 공사, 전기공사, 지장보살상, 해수관음상등 물도 불도 없던 곳을 부처님의 터전으로 일궜다. 그때 기도의 자신감을 얻었다. 사심이 아니면 다 이뤄진다는 것이다. 욕심을 비우면 그만큼 남을 돕는다고 하지요 사심없이 소지하고 기도를 했으니 정방사가 천년의 기도 도량으로 거듭나는 공덕을 입었다고 본다고 말한다.

지리산 정견스님은 “폐허와 같은 정방사를 제천 중심 사찰로 일구어놓은 후 여러 인연으로 다시 사찰을 창건하시기도 하고, 옆에서 본 스님은 참으로 부지런하고. 담백하고 담담한 것이 특징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버릇없이 스님을 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지만 늘 그래도 스님같은 사형이 있다는 것이 든든하기도 하다”고 말씀하셨다

23년을 꼬박 정방사에서 생활하다 2008년 정방사를 사직하고 2009년 자은사를 개원했다. 2018년 10월에는 큰법당을 낙성했다.

석구스님은 제천 ‘우리는 선우’ 지도법사, 제5탄약창 군법당(호명사) 상임지도법사, 제천장애인복지관 운영위원장, 제천환경운동연합 상임대표, 제천불교총연합회 회장 등을 지냈다.

석구스님은 50년 수행의 기록인 <기도 밖에는 모릅니다>란 책을 2022년 5월에 펴냈다. 스님의 구술을 담은 이 책은 예사롭지 않다. 물론 수수한 입말을 옮긴 것이라 투박하고 스님의 참모습을 드러내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럼에도 오직 기도로써 ‘깨달음을 구하고 뭇 중생을 이끄는’ 그 길을 달려온 스님의 걸음걸음을 전한다. 평범한 섬마을 소년이 푸릇한 시절에 꾸었던 꿈, 부처를 이루려는 꿈을 향한 여정을 무덤덤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석구스님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지장보살을 부르면서 지장보살의 그 큰 원력을 배우려 기도드린단다. 한 달에 두 번, 음력 초하루와 지장재일인 18일에는 법회를 연다.

초파일 불자들이 많이 찾는 이유에 대해서는 “자은사에 오면 맘이 편해지고, 기도하면 이뤄진다고 말씀을 많이 한다”며 “돈과 권력이 세속의 힘이라면 스님에게는 영적인 기운이 존재한다”고 귀띔했다. 인도에 가면 부처님께서 도를 깨우쳤다는 ‘보드가야’라는 성지가 있는데 매일 수만명이 모여서 기도한다. 이처럼 종교라는 것은 보이지 않지만 영험함이 있어야 한다는 게 스님의 생각이다.

큰스님은 유독 신행, 즉 실천을 강조하셨다. “성직자가 책보고, 좋은 말씀 다했는데 행동하지 않으면 누가 따라오겠는가?” 또 “지장보살처럼 저 밑바닥의 마지막 한사람까지도 함께 가겠다는 뜻을 가지라”고 주문했다.

조계종은 지난 4월 27일 영축총림 양산 통도사 설법전에서 ‘불기 2567년 대종사·명사 법계 품서식’을 봉행했다. 대종사와 명사 법계는 승랍 40년 이상의 덕망 높은 비구·비구니 스님에게 수여되는 것으로 조계종 내에서 수행력과 지도력을 상징한다. 이날 법석은 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의 종정 취임 후 첫 대종사·명사 법계 품서식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종정 성파 대종사는 “대종사·명사 법계 품서식은 삼천 대천 시방세계 제불보살이 증명하는 가운데 조계종 최고의 어른들을 모시는 법석”이라며 “연륜과 수행력 등 모든 것이 쌓이고 갖추어져야 받게 되는 최고의 법계”라고 말했다.

석구스님은 세상의 빛이 되는 종교인의 삶을 보여 주었다. “작은 등불 하나가 수많은 등불이 되듯이 우리의 작은 따뜻한 손길이 바로 이웃과 주변을 훈훈하게 하는 빛이 되고 모든 생명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며 기도한다”고 말씀하신다. 

또한 너무 싫은 사람 좋은 사람 가리지 말고 온갖 만물 차별 없이 키우고 보호하는 저 대지처럼 이웃과 주변에 묵묵히 포용하고 베풀면서 살아야한다고 말씀하시는 석구스님. 

자은사 큰 법당에서 삼배로 부처님께 기도드리고 나서 큰 스님과 차를 마시면서 말씀을 들었는데 마음이 평화스러웠으며 행복해졌다. 다시 또 자은사에 찾아와야겠다고 다짐하며 충북 제천에도 자랑스러운 남해인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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