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잘하는 것도 없고 눈에 띄게 못 하는 것도 없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그런 아이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가슴속에 품을 수 있는 스승이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큰 행운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학창시절, 졸업 후 사회생활 하든 인생 여정에서 만난 스승, 책 속의 스승이든 말이다. 

‘스승’이란 사전적 의미에는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스승’이라는 낱말 안에는 본받을 점과 존경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매년 찾아오는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선생님들은 제자들이 달아주는 카네이션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스승의 은혜’ 노래에 참다운 스승의 길과 올바른 교육에 대한 자긍심이 있었는데, 공교육의 불신, 그리고 사교육 팽창, 급변하는 교육 환경에 오히려 자긍심을 잃어버리고 있는 현실이다. 

‘촌지금지’라는 이유에서인지 스승의 날마저 카네이션이나 손수건 같은 작은 성의까지 못하게 하는 것은 지나친 측면이라는 판단이다. 배움 과정에 있는 제자들이 고마움, 은혜조차 느끼지 못하고 사회로 진출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그런 기본적인 삶의 도리를 깨닫게 가르치는 것이 참된 교육이 아닐까 한다. 잠을 자고 게임을 하는 학생, 수업 방해를 해도 별다른 제재방법이 없고 참교육을 위해 나섰다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게 된다면 어떤 선생님이 열정적으로 교육에 임하겠는가. 헌신적으로 가르치려던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잘못을 보고도 계속해서 눈감고 모른체 참아야 하는 교육 현장에서 교육다운 교육이 이루어질지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강진에서 18년 유배 시절 많은 제자를 키웠다. 깐깐한 다산의 성격 때문에 제자들이 힘들었다고 한다. 그 중 다산의 가르침을 평생 마음에 품고 행하며 산 제자가 황상이었다. 황상은 다산에게 “저에게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 둔하고, 둘째 막히고, 셋째 답답한 것입니다” 그러자 다산이 “배우는 사람에게는 큰 병통이 세 가지 있는데, 첫째, 외우는 데 민첩하면 소홀하고, 둘째, 글짓기에 날래면 들뜨고,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거친 데 있는데 너는 그것이 없다”고 하자 황상은 학문에 정진했는데 다산은 평생 ‘부지런함’이라는 글자를 결코 잊지 말도록 당부했고 황상은 스승의 가르침을 ‘삼근계’라 부르며 자신의 평생 신조로 삼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의 얘기를 해 볼까 한다.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유독 나를 귀여워해 주신 것 같다. 70년대만 해도 다들 형편이 좋지 않아 통통해 보이는 친구가 거의 없었던 시절에 아버지가 공직자를 하고 할아버지가 남해에서 제일 넓은 광머리 들에서 논 농사일을 상당히 해서인지 그런지 고구마가 한 끼 식사를 대신했던 그 시절에 밥을 굶지 않고 학교를 다녔던 기억이다. 

그래서인지 상대적으로 친구들보다 통통했고 선생님은 튼튼했던 그런 나를 더 귀여워해 하지 않았는가 싶다. 그래서 인지 나를 볼 때 마다 선생님은 너는 체격이 좋고 해서 정주영 회장과 같이 장래 토목건설 같은 일을 해 보면 좋을 것 같고 그런 일을 하면 잘할 것이라고 격려를 해주었던것 같다. 그 선생님의 영향인지 대학도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공직(토목직), 그리고 퇴직 후 지금도 토목건설 관련 분야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동안 내가 만났던 분들은 스승이라고 하기보다는 선생님에 가까웠던 것 같다. ‘명확하게 스승이라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보다는 ‘잔잔하게 기억에 남는 선생님도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다. 

6학년 담임 선생님은 어디에 살고 계시는지 모르지만 스승의 날이 되면 생각나고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 다른 이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그래서 조금 더 특별하고 스승의 날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다산이 황상에게, 6학년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했듯이, 나 역시 누군가에게 삶을 바꾼 만남이 되고 싶다. 어릴 적 선생님이 더욱 생각나는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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