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렸을 때 ‘제비’에 대한 기억은 익조(益鳥)라기보다는 사람을 조금 귀찮게 하는 새였다. 

봄이면 어김없이 날아와 초갓집 처마밑에 주인이 다른 여러 채의 집이 지어졌다. 

흥부전은 선을 권하고 악을 경계한다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을 내용으로 하는, 우리 선조들의 착하고 순하고 고운 마음을 담은 작가 미상의 구전 소설이고, 여기에 나오는 새가 ‘제비’이다. 

제비는 착한 흥부네 집에는 행운의 박씨를 물어다 주어 박에서 금은보화가 쏟아져나와 행복하게 되고, 마음씨가 나쁜 놀부네 집엔 나쁜 박씨를 물어다 주어 고약한 일이 일어나게 했다는 고전이다. 

삼월삼짓날 제비가 돌아오고 돌아온 제비가 우리 집에 집을 지으면 귀찮아 하면서도 싫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윗채 아래채 처마밑 여러 곳에다 집을 짓고 집을 짓다가 흙이 떨어지고 새끼를 기를 때면 어미가 미처 물어다 버리지 못한 똥이 떨어져서 하얗게 축담을 더럽혔다. 

그래서 주인의 마음씨가 흥부 같으면 제비집 밑에 판지를 붙여서 떨어진 똥을 제비가 떠난 후에 한꺼번에 치웠고 주인의 마음씨가 놀부 같으면 짓는 집을 떼어 버려서 얼씬도 못하게 해버렸다. 

봄에 부지런히 집을 짓고 새끼를 길러 가을이면 가족이 늘어난 제비들이 빨랫줄과 전깃줄에 앉아 떠남을 아쉬워하듯 지지배배대다가 어느 날 훌쩍 떠나버리면 아쉽고 서운하지만 내년에 또 올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요즘은 제비의 숫자가 부쩍 줄었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마을 앞에 날아다니는 제비를 셀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 제비가 얼마 전에 우리 집에 둥지를 틀었다. 며칠 전부터 골목에 제비가 자주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무심코 봤는데 아내가 제비집을 발견했다. 혹시나 해서 가 봤더니 벽돌벽에 집을 지어놓고 옆에 있는 가스관에 제비 부부가 다정하게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혹시 위협을 느낄까 조심스럽게 살짝 보고 왔다. 그 뒤로는 골목을 다닐 때면 곁눈으로 보면서 발뒤축을 들고 걸었다. 

며칠전부터 제비가 알을 품은 것 같다. 둥지에 있는 제비는 주둥이와 꼬리만 뾰족이 보이고 가스관에는 알을 품은 제비를 격려하는지 보초를 서는지 다른 제비가 다소곳이 앉아있다. 

흥부와 같은 마음씨를 가진 주인이 아니라서 내년에 행운의 박씨를 물어다 주지 않겠지만 여러 집 중에서 우리 집에 둥지를 틀어 준 제비가 무척 반갑고 고맙다. 저 제비가 알을 몇 개나 품었는지 모르지만 무사히 알을 부화하고 튼튼하게 길러서 강남으로 갔다가 내년에 따뜻한 봄 소식 안고 가족과 함께 다시 왔으면 하고 바래 본다. 즐거움과 기쁨이 별로 없는 세상에서 성급하고 작은 기대를 걸어 본다.  

/ 김태정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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