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철 월간 좋은생각, 창간인
정용철
​​​​​​​월간 좋은생각, 창간인

나에게 10권의 책과 10권의 다이어리, 잉크와 만년필이 있다면 어느 곳에서든 1년은 거뜬히 보낼 것 같다. 먼저 나는 책을 읽을 것이다. 내가 골라서 가져간 책이니 반복해 읽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 바로 어떤 세계로 들어간다. 그 세계는 저자가 이미 경험한 세상이다. 그곳에서 나는 저자를 따라다니면서 여러 곳의 풍경에 감탄할 것이다.

책을 읽으면 처음에는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그 책을 읽으면 저자의 내면세계가 내 마음으로 들어온다. 그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면서 일체감을 느낀다. 성실과 진실, 고통의 극복, 인간에 대한 예의와 애정을 발견하면 존경의 마음까지 생긴다. 존경할 사람이 많다는 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좋은 책이 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의 첫 번째 기준은 독자에 대한 애정이다.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내어놓는 것은 그 자체로 선하고 아름답다. 그런 책은 어느 단어, 어느 문장, 어느 부분도 조금의 소홀함도 없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고치고 또 고치고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해 끝까지 애쓴 흔적이 책 전체에 가득하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는 저자의 최선을 보고 싶어 책을 산다. 아무리 흔한 주제를 다룬 책이라 해도 최선을 다한 책은 페이지마다 빛이 난다. 프랑스 작가 크리스티앙 보뱅은 그의 책 ‘환희의 인간’에서 그 빛을 푸른색으로 표현했다. 좋은 책은 푸른 빛을 낸다. “나는 페이지마다 하늘의 푸르름이 스며든 책을 좋아합니다. (중략) 당신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금화와 같은 이 푸르름을 나는 글을 쓰며 당신에게 돌려 드리고 있습니다.” C. S 루이스는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했다. 우리는 책을 통해 내 생각이 나만의 생각이 아님을 확인한다. 이때 나는 안심한다. 저자의 기쁨은 독자와 하나 되는 것이고 독자의 기쁨은 저자와 하나 되는 것이다.

다음은 다이어리 열 권을 나의 일년살이에 왜 가져가고 싶은지에 대해 설명하겠다. 나는 40년 동안 책 만드는 일을 했다. 그러다 보니 무조건 글을 써야 했다. 그렇게 쓴 글들이 다이어리 120권이 되어 내 곁에 있다. 처음에는 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알았다. 내가 쓴 글을 내가 보며 ‘주기 아깝다’며 혼자 웃은 적도 있다. 이때가 좋았다. 

그 후 나는 글의 열등감에 빠져 오랫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다. 좋은 글을 알수록 내 글은 더 초라해 보였다. 글과 독자에 대한 두려움까지 생겼다. 어느 작가는 글쓰기를 ‘하늘이 내린 벌’ 즉, 천형이라고 했다. 글쓰기의 대가이며 교육자의 교육자라 불리는 파커 J. 파머도 ‘글쓰기는 곤혹스러움의 연속’이라고 했다. 파머는 원고 한 장을 건지기 위해 열 장 쓰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쓴 글을 보여 줄 때 아내의 표정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쓴 글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썼다. 어찌 까다롭고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이러한 두려움과 곤혹 속에서도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아무리 작고 초라한 글이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 가장 먼저 자기를 만난다. 자기가 글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글은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 글을 자주 쓰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이고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를 조금씩, 그리고 분명히 알게 된다. 그러면 그동안 쌓인 갈등과 혼란이 하나씩 가라앉고 일상이 정리되며 안정감이 생긴다. 이때부터 타인이 보이고 그들이 마음으로 들어온다. 웬만한 사람은 쉽게 이해되고 그의 삶과 인생도 신비롭고 아름답게 보인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폴 트루니에는 “나는 인간이 참된 접촉을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를 알았다. 이 접촉을 통해 생명의 숨결이 마음속 깊은 곳으로 흘러 들어온다.”라고 했다. 글은 우리가 애태우며 바라는 접촉이고 일체감이다. 독자와 저자는 글을 통해서 생명의 숨결을 서로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 흘려보내고 받아들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남해신문이 창간 33년을 맞았다. 글 쓰기와 글 읽기의 33년이다. 당연히 축하받을 일이고, 멋진 일이다. 우리는 남해신문을 통해 남해를 보았고 세상을 알았다. 좋은 일이다. 이제부터는 아마 더 좋은 일들이 남해신문을 통해 우리 앞에 속속 나타날 것이다. 

독자는 기대할 권리가 있다. 조금도 망설이지 말고 그대들의 글로 우리 남해 사람들을 자랑스럽게, 행복하게 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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