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신성(神性)입니다. 신성은 가장 성스러운 마음의 표상입니다. 여기에 부합하는 세대는 천심(天心)으로 명명되는 어린이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이 천심이라는 행보에서 마음이란 순수와 자연스러움의 극치입니다. 그래서 성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혹자들은 사람이 일평생을 살면서 천심에 도달하여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그러한 천심을 기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 년 중 단 하루만이라도 천심을 기릴 그날이 어린이날이라고 가정해본다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왜냐하면, 어린이날은 어린이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어른에게도 해당할 수 있는 신성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어른의 마음속에는 어린이의 마음이 담겨있지만, 일상에서 이를 만나보기가 쉽지 않기에 어린이날만이라도 순수 천심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마음을 천심으로 다진다는 차원에서 해마다 5월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소파 방정환 선생님과 소춘 김기전 선생님이십니다. 독자들도 잘 아시다시피 이 두 분은 어린이날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신 분입니다. 

소파(小波) 방정환 선생

5월 5일 어린이날을 지으신 소파(小波) 방정환 선생은 1899년생으로 서울 야주개(당주동)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당호인 소파를 한글로 풀어 ‘잔물’이라는 필명으로 동시를 남기기도 했는데, 소파는 19세에 독립운동가인 의암 손병희 선생의 사위가 되면서 비로소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를 어른의 스승으로 여기자며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어린이의 뜻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어린이가 하늘이요, 어른은 땅이라고도 하면서 새싹은 위로 보내고, 뿌리는 일제히 밑으로 가자”고 강변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1923년에는 어린이들을 대등한 존재로 인식하고 권리를 보장할 것을 촉구하면서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했습니다. 어린이에 대한 깊은 통찰과 사랑이 깃든 내용은 100여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나 여전히 의미가 깊어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

1.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1. 어린이를 늘 가까이하사 자주 이야기를 하여 주시오.

1.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랍게 하여 주시오.

1. 이발이나 목욕, 의복 같은 것을 때맞춰서 하도록 하여 주시오.

1.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1. 산보와 원족(소풍) 같은 것을 가끔가끔 시켜주시오.

1.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에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히 타일러 주시오.

1.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만한 놀이터와 기관 같은 것을 지어 주시오.

1. 대우주 뇌신경의 말초를 늙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도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 그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여 주시오. 

당시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 사용해, 어린이를 인격적 존재로 개념화했습니다. 이로써 어린이는 젊은이, 늙은이 등과 함께 대등한 호칭을 갖게 된 것입니다. 선생의 노력을 기려 서울시 종로구 수운회관 앞에는 세계 어린이 운동 발상지 기념 조형물이 서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도 “세계 최초로 어린이날을 만들고 어린이 인권선언을 창안하였지만, 오늘의 우리 시대에 과연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인가라는 질문에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춘 김기전 선생

소춘 선생은 1894년 6월 13일 평안북도 구성군 천마면 대성동에서 김정삼(金鼎參)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부친이신 김정삼 선생은 한학자였다가 1900년에 동학에 입교하여 대접주로 활약했을 정도의 거물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동학이라는 종교의 분위기에서 성장하였으며, 동학 교리강습소에서 신식 학문을 배운 후 서울로 올라와 1913년 보성전문학교 법과에 입학했습니다. 

1920년 6월에는 천도교 청년회가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월간지 ‘개벽’ 창간작업을 주도하였고, ‘개벽’지의 초대 편집국장 겸 주필로 취임하였습니다. 그 후 1921년 3월에 진주의 청소년 40명이 진주 소년회를 결성하여 3월 27일에 독립 만세를 부르기로 계획하였으나 검거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이에 깊은 감명을 받아 1921년 10월 ‘개벽’ 지에 ‘可賀할 소년계의 자각’이란 글을 썼으며 이때부터 소년운동조직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어린이 운동에 대한 이념은 “어린아이를 때리지 말라. 어린아이를 때리는 것은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리라”는 동학의 인내천 진리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으며, 그는 어린이 운동의 이념을 다지는 데만 열과 성을 다한 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이를 실천(어린이에게 경어를 쓰고, 절하기)하기로도 유명하였습니다. 

어린이날과 관련하여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두 분의 어록을 살피며 신성의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어린이날 의미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그때의 시대나 오늘의 시대나 어린이를 공경하는 풍조는 같으나 물질적 풍요에 어린이 마음의 본질을 훼손케 하는 일련의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두 어르신의 행보는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물론 어린이날을 맞이하는 행사가 곳곳에서 있기는 하지만 심연의 세계에서 바라보는 어린이날은 어린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의 마음 안에 살아있는 어린이의 마음을 살려내는 날이라는 고조된 의식이라면 어린이날의 의미가 더욱 특별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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