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호 전 해성중·고 총동창회장
정길호
전 해성중·고 총동창회장

계묘년 새해 3월 18일(음력 2월 27일) 붉은 핑크빛 홍매화 향이 그윽한 넓은 잔디구장 정원에 정장 차림의 노신사, 노숙녀 동문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먼 거리마다 않고 오랜만에 모교를 찾은 동문들, 그동안 수십 년이 흘러 여자동문들은 쉽게 잘 알아보지 못해 미안하고 죄송스럽기도 했다. 70세가 가까운 친구들 머리는 하얀 서리가 내리고 예쁘고 아름다웠던 옛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그동안 힘들게 살아온 삶의 흔적들만이 고스란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새삼 느껴졌다.  

남해해성고등학교는 1973년 3월 15일 개교하여 첫 입학생을 맞이했다. 어느새 50년이 되었다. 강산이 다섯 번 바뀐 셈이다. 남면에 고등학교가 없던 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다수 학생들이 진학을 하지 못하고 중학교 졸업장으로 사회 전선에 나가 설움과 배고픔 속에서 생활했다. 

과거 우리 남면 지역은 바다 해안을 낀 높은 지대의 지형으로 논보다 밭이 많았다. 보리와 고구마, 바다 해산물이 주소득원이었다. 바다 건너 먼 거리 여수항이 물물교환 상설시장이었다. 유일하게 경전호 여객선을 이용해 농산물을 팔아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생활했다. 열악한 환경조건에서 자식들의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부모들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남해해성고등학교가 문교부 인가를 받아 보통과, 토목과 각각 한 반씩 학생을 모집하면서 문을 열었다. 그해 졸업한 중학교 입학생이 제일 많았고 1년, 2년 전에 졸업한 학생들까지 동시에 진학을 하게 된 것이다. 남면으로서는 경사 중의 경사였다. 

세월이 흘러 그 후 꾸준히 성장 발전하여 2023년 1월까지 48회 4392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그러나 나라의 정책을 바로 세우지 못한 탓에 전국적으로 시골학교의 위기가 휘몰아쳤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등 산아제한정책으로 인구가 감소해 입학생 50명선이 무너지는 절박한 상태까지 직면했다. 남해군 교육청은 물론 남면 지역민들까지 초긴장 상태였다.

그런데 우리 학교가 폐교냐, 존속이냐 갈림길에서 기적이 이루어졌다. 바로 준설공사를 통해 덕월리와 오리 앞바다 매립지에 골프장 건설이 진행 중일 때 당시 하영제 군수께서 이중명 사장님의 손을 꼬옥 잡으며 해성고등학교를 맡아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한 것이다. 아무리 재력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학생 수가 정원미달이고 불모지 섬에 위치한 시골학교를 책임지겠다고 선뜻 나서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 후 1년 동안 고심 끝에 결심한 것이 지금의 해성고를 성장 시킨 계기가 된 것이다. 

나는 그동안 깊은 사연과 과거사를 전혀 모르는 문맹으로 살았다. 기념식 그날 이중명 이사장님은 17년 전 사업밖에 몰랐던 시절에 하영제 군수님의 권유로 학교 이사장을 맡았고 그 일이 평생 가장 잘한 일이 됐다고 하시면서 덕담을 하셨다. 하영제 국회의원도 남해군수 재직 당시 해성고를 살리기 위해 많은 고심을 하고 노력한 결과 좋은 결실을 맺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니 눈물이 나는 기념식이 되었다면서 이사장님과 함께 축하를 해 주었다. 

이번 해성 50년사 책 속에는 학교의 역사와 변천 과정, 전 동문의 졸업사진과 교내 각종 행사활동, 운동경기, 과거 학교 악대부 사진 등이 수록되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세상은 바뀌어도 기적은 언제나 일어나는 법이라고 했던가. 

인간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능력을 써먹지 못하고 만다. 좋은 학교에는 훌륭한 교사가 있기 마련이다. 스승이 어질고 훌륭해야 좋은 제자가 탄생한다. 우리는 좋은 스승을 모시고 싶고 좋은 제자를 갖고 싶다. 좋은 인연이야말로 축복받는 사람이 아닐까라는 명언이 생각난다.  

옛날 조선시대 3대 임금 태종(이방원)은 권력을 잡기 위해 형제의 난을 비롯해 고려 충신들을 많이 해쳤다. 그러나 그는 어릴 적 글을 가르쳐 주신 스승만큼은 늘 존경했다. 그의 스승은 온곡 원천석 선생이다. 고려가 멸망하자 원천석 선생은 모든 직을 내려놓고 치악산 깊은 산골로 입산하여 농사를 지으며 살다 일생을 마쳤다. 태종 이방원이 직접 찾아가 만나줄 것을 애원하다 되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스승과 제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교단의 회초리는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선생님의 회초리가 제일 무서웠다. 우리는 그 시절에는 다 그렇게 되는 줄만 알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이번 해성고등학교 개교 5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많은 동문들이 다함께 힘을 보탰다. 박종갑 총동문회장, 재경·재부·남해 동문회장, 김철배 사무국장이 1년 전부터 행사 준비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5회 졸업생 최성기 동문은 모든 기획을 담당하고 기념책자 발행 등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날 식전행사로 기념비 제막식 현장에는 멀리 부산에서 버스를 불러 참석했고 해성 동문 전통 농악한마당 놀이패가 흥미있는 공연을 펼쳐 너무 아름다웠다. 실내 기념식장에서는 난타공연이 기념식을 더욱 빛나게 했다. 공연이 끝나고 해천관에는 내빈·재학생·동문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날 김철배 사무국장의 기념식 시작 선언과 함께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전문사회가 수준으로 화기애애함이 넘치는 멋진 행사가 진행됐다. 시상식에서 이중명 이사장님, 최성기 전 해성고 교장께 학교 발전의 공로로 전 동문의 뜻을 모아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번에 전국에서 다 모인 명문사학 해성고 동문들 앞으로 50년사에서 70년, 100년의 먼 미래를 내다보며 세계 속으로 거듭나는 명문사학이 되도록 다함께 노력해 주시길 바라면서 동문과 군민들의 각 가정에 아름다운 삶의 향기가 가득하길 기원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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