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 중심도로 국도 19호선 도로 주변의 하얀 이팝나무와 3호선 등 국도와 지방도, 군도 등 어디를 둘러봐도 산에는 짙붉은 철쭉꽃이 아름답게 계속 이어지고 4월 중순임에도 남해의 산들이 푸른 숲으로 덮인 신록(新綠)이 절정이다. 연둣빛과 연초록빛 신록의 숲을 무대로 봄볕이 연출하는 벅찬 광경이다. 

50년 이상의 세월을 보낸 친구 집의 모란이 이른 4월에 활짝 피었다. 김영랑 시인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시에서 5월 봄에 피는 모란꽃을 보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4월에 모란과 이팝나무가 솟은 것이다. 예전에 비해 대략 한 달이나 이른 셈. 

사실 올해 모란과 이팝나무만 빨리 핀 게 아니다. 목련 이후에 순차적으로 피어야 할 개나리·벚꽃·진달래가 거의 동시에 개화했다. 게다가 남부지방부터 순차적으로 북쪽을 향해 개화한 것이 아니라 거의 전국에서 꽃봉오리를 터트렸다. 4월의 신록이라니? ‘4월의 꽃-5월 신록의 시작’이 자연의 이치라고 책과 경험으로 배웠다. 한데 한 달 빨라진 ‘3월의 꽃-4월의 신록’이라니. 이런 추세면 언제고 ‘2월의 꽃-3월의 신록’으로, 또 ‘2월의 꽃과 신록’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 아닌지, 본격적인 기후 위기가 시작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꽃피는 남해”의 축제는 벚꽃 피는 시기를 다행히 딱 맞추었지만, 봄꽃이 철모르고 피다 보니 다른 지역 꽃 축제는 꽃도 없이 진행되는 등 축제가 엉망이 되었다고 한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그냥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추위의 긴 터널을 지나 만끽하는 봄기운처럼 반가운 것은 없다. 

그런데 4월 치고는 너무 따뜻한 것 아닌가? 지난주 대구는 4월 중순임에도 벌써 29도까지 기록했다고 한다. 아침저녁은 쌀쌀하고 한낮에는 때아닌 초여름 날씨가 벌써 시작된 것이다. 아무 때나 신록으로 움트면 자연의 섭리도 엉망이 된다. 최근 뉴스에 한라산과 지리산에 자생하던 구상나무숲이 한꺼번에 말라 죽는 현상처럼, 기후 위기로 야기된 불안정한 날씨로 봄과 여름이 빨라지고 길어지고 가뭄과 산불, 홍수와 산사태가 짝꿍처럼 반복된다. 한 달 이상 빨리 찾아 온 4월의 신록을 무작정 반길 수 없는 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가 회복력의 시대를 구축해야만 하는 난제가 크고 급박한 탓이다.

지금의 이 따스함이 올여름에 얼마나 극심한 무더위를 예고하는 것인지 미리 걱정스런 상상까지 하게 된다. 봄의 따뜻하고 좋은 날씨조차 문제의식을 갖고 바라보는 사람이야말로 오히려 시대의 흐름과 위기를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벚꽃의 이른 개화를 보며 기후환경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은 이 신호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 평균기온이 2.4도 이상 상승하면 지표면의 30%가 사막화된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 붕괴한다는 의미다. 최근 정부의 1차 탄소중립 계획안은 2030년까지 산업 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4.5%에서 11.4%로 하향 조정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걱정하는 위기를 산업계와 정부만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도, 경제도, 성장도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이 사라지게 된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현재의 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반토막 내는 수준으로 줄여야 기온상승을 1.5℃ 안으로 묶을 수 있다고 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제6차 평가보고서에 ‘마지막 경고’라는 무시무시한 부제까지 달고 공표한 소식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빠르고 효과적으로 적극 동참하면 1.5℃ 한계선 안에 머물 수 있다고 확인하고 있지만, 전 세계 국가들이 감축을 이행한다고 노력해도 이 세기말 지구 온도는 2.5도 높아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우울한 분석이 나왔다. 

사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기후를 전처럼 돌리는 것이 아니라 더 올라가지 않도록 막는 일이다. 모두가 나서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4월에 시작된 신록을 보고 따뜻한 봄 기운만 즐기고 반길 순 없는 것이다. 그것도 너무나 때 이른 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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