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현실에서 정신건강의 상실에서 오는 후유증은 심각할 정도입니다. 특히 심인성 질환이라고 칭하는 마음의 부조화에서 오는 병증은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여서 이를 방관만 할 수 없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과학 문명의 기술력은 대단히 빠르게 전개되는 현실에서 대중의 심리는 이와는 반대로 더 불안해지고 강박증, 분노, 우울증과 같은 증세가 심화함으로써 심신의 병증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빠르고 신속하게 라는 구호와 대량 생산의 틈바구니에서 심화된 경쟁력은 인간의 성품과 마음을 무디고 차갑게 만들며, 사람의 존재 가치를 폄하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추세에서 다급해진 인간의 심리는 조급증이 만연하여 빨리 처리해야 하고, 빨리 먹어야 하며, 빨리 움직여야 하는 불균형을 초래하는데, 이에 편성한 만연된 습관심이 일회용 컵이나 플라스틱 빨대와 같은 물질에 의존하는 경향을 심화함으로써 환경에도 큰 위협이 되기도 합니다. 

이 밖에 심인성 질환에 기인한 병증은 혈액의 순환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고 인체 면역체계를 저하시키며 자율 조정능력의 감퇴를 불러옵니다. 또한, 생리적 부작용과 무기력증을 유발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상실케하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이러한 증세를 만회하기 위해 약물이나 술, 담배, 식탐, 쇼핑, 오락 등에 심취하면서 허무감이나 자괴감 등을 달래기도 하는데,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일시적일 뿐 상심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는 좀 더 면밀한 방법이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 병에 기인한 심신 부조화와 그 후유증을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해소하고 치유하여야만 회복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약물과 수술 등의 치료행위와 함께 가장 민감하고 예민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관심을 두는 일입니다. 마음이 번뇌에 휩싸이게 되면 아무리 좋은 일이 앞에 있더라도 혼란의 감정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 가장 시급한 처방은 우선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일인데, 특히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은 심신의 안정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데 좋은 방안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친절, 자비, 사랑, 헌신, 자애심을 배양하는 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몸(주의력, 집중력을 통한 이완), 마음(잠재성, 관계성 치유), 성품(본질성, 정체성, 우주적 관계성)의 관계성은 사회 전체의 자율적 도덕관에도 영향을 미치게 한다는 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마음 훈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지역에서 계층별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만 마음을 다스리며 심신의 이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과거 우리의 조상 시절에서부터 끊임없이 실시돼왔습니다. 어르신들이 어린 시절 경험하였을 도리도리로부터 시작되어 짝짜꿍과 곰지곰지, 걸음마 걸음마 등의 정동(靜動) 활동은 마음과 몸을 이완시키는 운동이었습니다. 

또한, 내면을 정화하는 차원에서 햇빛의 정기와 바람과 공기와 물의 상호작용을 섭렵하며 인체 세포의 문을 열고 우주 자연의 광활한 기운을 받는 무의식이나 무위(無爲) 호흡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을 성장시켜 오기도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터득하는 명상의 참모습은 다름 아닌 자기 응시를 통한 자기 변화와 자기 개혁이었습니다. 

모든 도덕관이 자신의 차원을 변화시키는 일에서 출발하여졌다는 점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살피고 변화를 이루어내는 일, 내가 나를 위한 수동적 자기 응시로부터 시작된 변화의 조짐은 궁극적으로 본성에 이르기 위한 과정입니다. 이 본성은 나의 중심자리로서 순수함이 깃든 곳인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중심은 외부의 어떤 곳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순수 의식의 결정체 그 자체입니다. 그곳은 고요하고 잠잠한 기운 속에서 어머니의 성심(性心)과 연결된 순수함이 깃든 자리로서 우리가 생애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야 하고, 만나야 되는 그런 자리입니다. 일생일대에 단 한 번만이라도 본성을 만나는 일, 이것이 또한 우리가 명상을 해야 하는 이유라면 어찌 한시라도 주저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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