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앞 도로를 지나던 버스가 먼지를 휘날리며 저만치 달려갑니다. 도로에 흙이 쌓여 있어서인지 뿌연 흙먼지가 회오리치듯 하늘을 뒤덮습니다. 아스팔트 도로 위에 뿌연 먼지가 날리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마치 60년대 말, 자갈돌 깔린 흙길을 지나던 버스가 먼지를 휘날리며 오가던 때가 생각납니다. 

뿌옇게 휘날리는 먼지조차도 멋지게 보이던 시절, 삼삼오오 짝을 지어 놀던 아이들은 휘날리는 먼지가 신기한 듯 버스 꽁무니를 향해 냅다 달리곤 하였습니다. 버스를 향해 달리던 그때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땐 참 철이 없었다며 헛웃음을 짓지만, 거리를 오가는 소달구지에 익숙한 어린 마음으로서는 버스는 물론 버스 꽁무니에서 나오는 연기조차도 신기해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이러한 장면은 비단 버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때때로 여름 한낮 방역 차가 도로 한가운데를 지나기도 하였는데, 기다란 연통에서 내뿜는 연기를 향해 동네 아이들이 숨박꼭질 하듯 달리던 모습은 지금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돌기도 합니다. 비록 지금은 아스팔트에다가 자가용이 일상화된 시대여서 어린 시절의 경험이 아주 오래된 옛날이야기처럼 되어버렸지만, 그렇지만 그때 느꼈던 길에 대한 추억은 필자의 가슴에 오랫동안 정(情)으로 남아돌 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필자만이 아니라 60년대를 살았던 어르신이라면 누구나 기억에 남아돌 그런 장면일 것입니다. 

필자가 이처럼 길에 애착을 두는 것은 어린 시절에 느꼈던 길에 대한 소회가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특히 방학 때 외가댁에서 느낀 길에 대한 인상은 더욱 그러한 마음을 부채질하였습니다. 마을 너머 1km 남짓한 외길을 따라 넘어오는 버스를 보고 차를 타기 위해 대문을 나서는 외할아버지의 육중한 몸놀림에 차를 타지 못할까 봐 가슴 쪼아리던 기억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입니다. 관심을 보이고 애달아하고 걱정하며 누구나 내 몸같이 여기는 심정이 특출했던 시기에 인식된 잔잔한 정(情)이 잠재의식에 남아 은연중에 길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인지하였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길은 같은 길이로되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형성된 인간다움, 배려와 겸손의 미덕이 정(情)으로 남아돈 그때의 길에 더 애착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기억이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다가, 길에 대한 감정이 특별할 때면 꼭꼭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길에 대한 이미지가 남아있는 그 길을 오늘도 걸어가고 있습니다. 60년 대의 인심 그리고 2천 년 대 사이, 길은 똑같은 길이지만, 지금은 수많은 자동차의 통행로가 된 길의 애환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고도 남음을 깨달으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길고 넓게 펼쳐진 자갈 흙길을 가로질러 논과 논의 경계를 잇는 사잇길에 비교하면 지금이야 길이 잘 닦여져 당장은 편리할지 몰라도, 어린 시절 다니던 길의 정(情) 만큼이야 하겠습니까? 이런 소회에 젖으며 길을 통하여 느낄 정(情)이 모두의 마음에 담을 추억의 길을 만들어 보는 것도, 오늘의 길을 아름답게 하는 의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걸어야 하고 걷는 여정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길에는 사람이 다니는 길도 있을 것이고, 마음의 본래 자리를 찾아가는 길도 있습니다. 누구나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관심을 두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마음의 길이 특히 그렇습니다, 

마음의 길은, 길이 나 있기는 하나 보이지 않기에, 그 길을 가려면 오직 직관으로 길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혹시 누군가가 열정을 다하여 그 길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 마음 길을 지키고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며 보다 집중된 의지가 필요한 그런 길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행위 여부에 견주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성격에 치우쳐 본래의 나 자신을 잊어버리는 습관된 마음을 뛰어넘기 위해 고도의 명상이 필요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마음 안에서 길을 내고 간다는 철학의 소견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마음의 길이요, 성품 자리에 이를 길이라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가야 하는 인생길의 최종 목적지가 될지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행보로서 나아가는데 나를 기점으로 내가 있으면 세상이 있는 것이요, 내가 없으면 세상이 없듯이, 내가 주체가 되어 걷는 행보 하나하나를 통털어 보면 전체 우주와 지구 생명이 온전히 나와 함께 이동하는 것이라면, 길을 가는 그것 아무렇거나 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길에 대비한 순환지리(巡還地理)의 회복이요 인심(人心)을 보장하는 정(情)의 길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까지 걸어온 길, 또 앞으로 걸을 수많은 길들 그리고 정말 소중히 하여야 할 마음 길을 걷는데 장애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고 고치며 걸어간다면 어린 시절 가슴에 담아둔 추억의 길이 어느 정도는 소생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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