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성 기창선고등학교 교장
최 성 기
​​​​​​​창선고등학교 교장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청렴(淸廉)은 목민관(牧民官)의 본무(本務)요, 모든 선(善)의 근원이며, 덕(德)의 바탕이니 청렴하지 않고서는 능히 목민관이 될 수 없다’라고 했다. 청렴결백의 덕목인 ‘육자염결(六字廉訣)과 사불삼거(四不三拒)’의 이야기를 통해 청렴하고 올곧은 공직자의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육자염결(六字廉訣ㆍ재물, 여색, 지위, 밝음, 위엄, 강직)은 송나라 유의경(劉義慶)이 편찬한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오는 말로, 공직자의 청렴을 강조할 때 가끔 인용되는 고사성어이다. 옛날 중국에 소현령(蕭縣令)이라는 사람이 선인(仙人) 부구옹(浮丘翁)에게 고을을 잘 다스리는 방법을 묻자 청렴할 염(廉) 자를 여섯 번을 써주었다. 부구옹은 염(廉) 자를 써주면서 재물, 여색, 지위에 이 글자를 생각하라고 했다. 나머지 염에 대해서는 “염(廉)은 밝음을 낳기 때문에 정(情)을 숨기지 못하고, 염(廉)은 위엄을 낳기 때문에 백성들이 명(命)을 따를 것이고, 염(廉)은 강직함이니 상관이 가벼이 보지 못할 것”이라며 염(廉) 자를 써준 이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은 강진 유배 중, 한양에서 절친인 문산(文山) 이재의(李載毅)가 찾아와 약관(弱冠)의 나이에 영암군수(靈巖郡守)가 된 자기 아들, 이종영(李鍾英)이 훌륭한 목민관(牧民官)이 될 수 있도록 글을 부탁하자, ‘육자염결’을 인용했다. 어린 나이인 이종영에게 목민관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으로 청렴을 강조한 것이다. 다산은 이종영이 영암군수를 마치고 부령도호부사로 부임할 때는 목민관이 두려워해야 할 네 가지를 덧붙였다. 백성과 하늘, 중앙 부서와 조정을 꼽고 그중에서도 목민관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백성이라고 했다.

또한 청렴도를 가름하는 ‘사불삼거(四不三拒)’는 조선시대 관료들이 재임 중에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四不)로 ① 부업을 하지 않고, ② 땅을 사지 않고, ③ 집을 늘리지 않고, ④ 재임지의 명산물을 먹지 않는 것과 꼭 거절해야 할 세 가지(三拒) ① 윗사람의 부당한 요구 ② 청을 들어준 것에 대한 답례 ③ 경조사의 과한 부조(扶助)이다. 

조선 영조 때, 청렴 강직하기로 유명한 호조(戶曹) 아전 김수팽(金壽彭)의 이야기가 있다. 김수팽이 어느 날 선혜청(宣惠廳) 아전으로 있는 동생의 집에 들렀을 때, 마당 여기저기에 염료 통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무엇에 쓰는 통이냐고 물었다. 동생이 “아내가 염색일을 부업으로 한다.”라고 하자 김수팽은 염료 통을 모두 엎어 버리고는 “우리가 나라의 녹(錄)을 받고 있는데, 부업을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무엇으로 먹고 살라는 것이냐?”라고 했단다. 그리고 한 번은 호조판서가 바둑을 두느라고 공문서 결재를 미루자, 김수팽이 대청마루에 올라가 판서의 바둑판을 엎어 버리고는 마당에 내려와 무릎을 꿇고, “죽을죄를 지었으나 결재부터 해달라”하니 판서는 죄를 묻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연산군 때 풍기(豊基) 군수 윤석보(尹碩輔)의 이야기이다. 윤석보는 아내가 시집 올 때 가져 온 비단옷을 팔아 채소밭 한 뙈기를 산 것을 알고는 사표를 냈다고 한다. 윤석보가 풍기 군수로 임명되어 처자(妻子)를 고향에 두고 혼자 부임하게 되자, 고향의 식구들은 궁색한 살림살이를 견디다 못해 집안의 물건을 팔아 밭을 샀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윤 군수가 식구들에게 말했다. 옛말에 공직에 있으면서 자신을 위해 한 척의 땅이라도 넓혀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국록(國祿) 이외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내가 관직에 올라 국록(國祿)을 받으면서 이전에 없던 땅을 장만했다면, 세상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리고는 즉시 사표를 냈다고 한다.

다음은 연안(延安)부사 기건(奇虔)의 이야기다. 부임지 연안(延安)에는 붕어가 유명해서 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기건(奇虔)은 재임 6년 동안 붕어는 입에 대지도 않았고, 제주 목사로 3년 동안 있을 때는 전복(全鰒)을 아예 먹지도 않았다고 한다. 딱할 정도로 융통성이 없는 데다 벽창호같이 고지식한 분들의 이야기 같지만, 오늘날 모든 공직자가 한번은 되새겨야 봐야 할 것 같다.

반면, 꼭 거절해야 할 세 가지(三拒)는 윗사람의 부당한 요구, 청을 들어준 것에 대한 답례, 경조사의 과한 부조이다. 청송(靑松) 부사 정붕(鄭鵬)은 영의정(領議政)이 꿀과 잣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자 ‘잣나무는 높은 산 위에 있고, 꿀은 민가의 벌통 속에 있다’고 답을 보냈고, 우의정(右議政) 김수항(金壽恒)은 그의 아들이 죽었을 때, 무명 한 필을 보낸 지방관에게 오히려 벌을 주었다고 한다.

다음은 필자 지인에 관한 이야기다. 자녀가 공직자 재산등록을 하면서 아버지에게 카톡으로 재산 내역을 묻더니, ‘근데 우리 집 재산은 참 투명하네요. 특별히 신고할 재산이 없네요. 그러고는 한마디, 아버지 정말 우리 집은 청렴한 것 같아요. 이를 믿지 않을 것 같은 현실이 그저 슬프네요.’ 큰 울림으로 다가오지만 왠지 씁쓸함으로 다가옴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장관 후보자나 고위 공무원들의 인사청문회를 보면 공직사회에서 사불삼거의 전통은 사라진 지 오래인 것 같다. 그 대신 사필(四必)이 자리 잡은 듯하다. 그것은 ① 위장전입(僞裝轉入), ② 탈세(脫稅), ③ 병역면제(兵役免除), ④ 논문표절(論文剽竊) 등이다. 최근에는 자녀의 학폭도 추가된 것 같다. 

공직사회를 바라보는 국민의 눈높이를 충족하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공직자 스스로의 마음 자세가 더욱 엄격해야 한다. 청렴(淸廉)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부와 명예는 크고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부귀(富貴)보다 더 높고 값진 것은 높은 인격과 청렴한 태도이다. 따라서 공직자는 옛 선조들의 ‘육자염결(六字廉訣)과 사불삼거(四不三拒)’의 지혜를 배워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청렴한 사회가 되어야 품격있고 살맛 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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