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네 마음을 움츠리게 했던 찬 기운이 가고 봄이 왔습니다. 봄은 왔건만, 봄의 기원이나 유래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아차릴 겨를도 없이 성큼 우리 곁에 다가온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 치의 착오 없이 다가온 봄은 사계절이 변환하는 가운데서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따스함으로 상징되는 정겨움이라든지, 뭇 생명의 탄생을 기리는 경이로움은 설렘을 넘어 보는 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봄의 여정을 지켜보면 먼 옛날부터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갈아들고 교차하는 질서는 우연이 아니요, 어떤 힘으로 움직여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너무나 정교하고 섬세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겉으로 드러난 봄의 실상 못지않게 우리가 익히 알면서도 간과하지 못하는 또 다른 봄의 실체인 것은 아닌지 그 의미를 유추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처럼 명료한 질서가 일 년 365일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질서정연하게 옮겨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순연한 질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초연함, 쉼 없는 열정과 끈기는 그 무엇으로 표현하여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덕(德)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이처럼 덕이 갸름할 수 있는 행보는 지키고 보존하고 나누는 것인데, 어떤 행위에 있어 차별을 두지 않고 균일하게 베푸는 사례로서 사계절의 순환처럼 뚜렷하게 질서를 도모하는 사례가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하면 가히 그 순연함을 정말 극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를 보면 우리는 보이는 형상에 집착하다 정작 중요한 보이지 않는 실체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그런 삶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정말 중요한 덕의 실체를 놓치는 실수를 범한다면 이것처럼 우매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덕의 관점에서 유형으로 드러나는 덕 못지않게 이를 움직이게 하는 무형의 덕 또한 진리와 지혜를 증명할 구체적 사유가 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나열하면 하늘과 땅 사이 해와 달, 별과 은하의 덕을 입고 살면서도 이들이 행하는 끈기와 지고지순한 행보 그리고 그 작용에 대한 감사함을 삶에 옮기지 못한다면 이것은 불효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늘 접하는 공기, 물, 산소, 햇빛, 바람, 흙, 불 등이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삶을 유지할 수 있으며, 절기와 기후의 관계성, 해와 달이 교차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음과 양의 조화는 사람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보이지 않는 이 덕의 실체적 힘이 무한히 넓고 깊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다 입자와 입자의 교감, 믿음 에너지의 확장력, 한 치 오차 없는 에너지의 순환, 생명 에너지의 역동성, 언어와 뜻에 공감하고 순응하는 감각 능력은 최고의 덕으로까지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늘 일정하게 쉬는 숨이나 심장의 움직임, 피의 흐름, 신경의 섬세함, 두뇌의 작용, 산소와 물, 공기의 순환, 감정 에너지의 발산과 수렴, 때에 순응하는 세포의 초자연적 활용 등이 모두 그렇습니다. 

이처럼 덕의 유·무형적 조건이 넓고 깊을 진데, 이러한 덕의 유형을 사람이 행하는 예절이나 윤리에 비유하는 것 못지않게 순리와 순수의 긍정성으로 확대할 때 그 가치는 더욱 명료해질 것입니다. 이러므로 덕은 키워주고 보살펴 주는 부모의 역할이나 순리 순수가 가미된 자연의 역할이 별반 다르지 않고, 그 성분 또한 차이가 나지 않기에 덕의 보편적 가치를 더욱 확대 섭렵하는 지혜야말로 사람이 행할 바 최고의 덕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이처럼 의미 있는 덕을 예찬하면서 사람의 덕성에다 자연의 질서를 더하는 보다 섬세한 감각이 가미된 그러한 덕을 생활에 반영한다면 봄은 더욱 만개한 기쁨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한 행보로서 다가온 봄의 덕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덕의 보편적 기준이 부모의 사랑, 가족 간의 우애, 친구와 스승 간에 나누고 위하는 가운데 그러한 덕 못지않게 이를 상회하는 자연의 덕, 봄의 덕을 섭렵한다면 우리의 생명은 더욱 고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실상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이처럼 소중한 덕을 어김없이 지켜낸다는 것, 있는 그대로를 유지한다는 것, 진실을 원형대로 받아들인다는 행보를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보가 거의 수천 년을 이어오면서 평정심과 초연함으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오늘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봄의 덕이 갖는 상징성이 얼마나 크고 귀한지 갸름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