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출신 김봉군 교수(가톨릭대학교)가 네 번째 에세이집 「선한 이가 당하는 고통에 대한 묵상」(한국문학신문사)을 펴냈다. 융합 인문학 명저 「이 역사를 어찌할 것인가」(문예바다)와 문학평론집 「문학 비평과 문예 창작론」에 이어 3년 연속 상재한 세 번째 저서다.

김 교수는 학력부터 특이하다. 서울대학교에서 대학을 두 번이나 다니며 문학과 법학을 전공했고, 고심 끝에 대학원에서는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글에 풍부한 감수성과 함께 유연한 논리가 깃든 이유다. 그가 문학교수로 평론과 시를 쓰는 인문학자가 된 데는 곡절이 많다. 이 책의 서문이 그 상징적 증거다.

‘성직자가 되려 했다. 하늘이 아니라고 손사래 치셨다. 법관이 되려 했으나, 스승께서 권하신 것은 학자의 길이었다. 중병과 세상 환란의 아아로운 비탈길에서 실족하지 않고 교육자로, 문학 교수로 걸어온 길. 지금은 빛 속에 있다. 넘치는 은혜다. 그럼에도 내 영혼의 키는 아직 작다.’ 이 짧은 머리말 속에서도 파란만장했던 저자의 개인사가 실히 짚인다.

이 책에는 그리움이 물결치는 고향 남해의 절경,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뱃길,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비극적 결함, 선악·미추가 격하게 충돌하는 역사의 파란과 그 뒤안길, 죄와 벌과 죽음의 의미, 자연·인간·절대 진리 간의 만남과 그 분리의 비극 등을 다룬 60개 주제들이 사람의 심령을 흔들어 놓는다. 특히 한센병 환자와 걸인들에게도 밥상을 차려 대접하셨던 김 교수 어머니에 대한 회고담은 독자들 심금의 G현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에세이 곳곳에는 사랑과 봉사, 자기희생, 화해와 용서의 선한 윤리가 별떨기인 양 아로새겨져 있다. 일제 강점기 말에 태어나서 광복과 대한민국 건국을 체험했고, 대학생 시절에는 4·19 혁명 대열 최전방에서 민주화를 절규했던 김 교수가 80세를 훌쩍 넘긴 이 시기에 에세이집을 낸 데는 우리가 지나쳐서는 안 될 결곡한 의도가 있을 법하다. 증오·저주하기보다 참회·용서하고 화평케 하는 길을 암시하는 숨은 의도 말이다.

김 교수의 에세이에 스며 있는 심미적 윤리는 삶과 역사에 대한 긍정의 정신에 있다. 가령 우리 고장의 옛날 어로법인 「돌발과 후리」는 공동체 정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증언이며, 20세기 우리 역사도 오늘의 번영을 위한 ‘아프나 빛나는 분투’로 보는 생산적 관점이야말로 신선하다. “우리는 말 많고 시끄러운 백가쟁명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끌며 분열·반목·혼란의 피어린 투쟁의 역사를 살면서도 마침내 부요한 강국을 만들기에 성공했다”는 대목은 감동적이다. “네 탓이야”의 삿대질에 대한 윤리적 반전이다. 이런 긍정적 사고는 김 교수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법’ 덕이라 할 것이다.

김 교수의 에세이 문체는 간결하다. 아무리 번거로운 이야깃거리도 그의 에세이에서는 간결하게 제시된다. 28년간 스테디셀러였던 그의 글쓰기 저서 「문장기술론」에 제시된 간결성의 원리에 따른 것이다. “필요한 상황에 필요한 말을 필요한 만큼만 쓰라”는 말은 글쓰기와 말하기의 금언이다. 독자들은 이 에세이집을 읽으면서 글쓰기 수련까지 하게 되어 일거양득의 수확을 거두게 될 것이다.

김 교수의 고향 사랑이 듬뿍 담긴 글은 「내 고향 남쪽 바다」다.

“금산 정상에 올라서면, 갈맷빛 한려수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거제 지심도에서 여수 오동도에 이르는 한려수도를 바라보며 자라난 남해인들은 꿈이 원대하고 개척 정신이 강하다. 남해에서 좋은 사람과 큰 인물이 많이 나는 것은 아름답고 광활한 대자연이 주는 청정한 에너지 덕이다.”

김 교수는 이 아름다운 고향에서 자라며, “남해 바다 아스라한 수평선 너머로 나의 꿈은 ‘미래의 신화’로 신기루처럼 피어올랐다. 그리고 나는 그 신기루를 환영(幻影)이 아닌 현실이 되게 하겠다는 다짐 속에 귀갓길을 재우치곤 했다”고 소년 시절을 회고한다. 곤고한 처지에도 좌절치 않고 먼 미래를 향하여 꿈을 키운 긍정의 정신이 이때부터 드러났다.

그는 에세이 곳곳에서 선하고 신실한 삶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이를 위하여 로드 에이브버리의 「인생의 선용」에서 정수가 되는 곳만 추려 독자들에게 마음의 양식이 되게 한다.

사람들이 오래 살려고 애쓰는 것보다 더 노력하는 것이 없고, 인생을 보람있게 보내려고 애쓰지 않는 것보다 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도 없다.

악행 중에 번영하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은 없다. 인류 가운데는 베푸는 사람과 해를 끼치는 사람이 있다. 만일 당신이 후자에 속한다면, 친구를 적으로, 기억을 고통으로, 인생을 슬픔으로, 세상을 감옥으로, 죽음을 공포로 바꾼다.

이 글만으로도 에이브버리는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지금 우리는 디지털 문명의 눈부신 기교에 넋을 잃고, 왜 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놀랍도록 무심하다. 김 교수의 에세이는 이 시대 문명 현상에 청량한 경종을 울리는 인문학의 정수를, 302페이지의 작은 책에 녹여 담았다.

김 교수의 궁극적 소망은 자신의 흐려진 영혼을 맑히고, 독자들에게 구원의 작은 실마리라도 붙들게 하는 데 있다.

한국문학신문. 302쪽. 교보문고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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