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 ‘고향의 봄’ 가사입니다. 가끔 동요 동시를 즐겨듣는 필자는 고향의 봄이 나올 때면 지그시 눈을 감고 회상에 잠기곤 합니다. 가사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에 담을 때면 그때 그 시절 애절한 정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눈시울이 적셔질 때도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도 비록 지금은 한겨울이긴 하나 머지않아 다가올 고향의 봄을 기리며 함께 불러본다면 그 의미만큼이나 아름다운 추억이 마음을 장식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심경이 담겨있는 고향은 노래에 담겨있는 의미 이상으로 누구든 우리에게 고향이란 인간을 가장 따뜻하게 해줄 사랑이요, 어머니의 품과 같은 자비로움이 스며있는 공간이기에 더욱 애절하게 다가옵니다. 물론 사람이 같은 성향이 아니기에 꼭 고향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한두 곳 정도는 있을 것입니다. 왠지 모르게 그곳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거나 포근한 감을 느껴 기분이 좋아져 자주 찾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고향은 좋아하는 공간이라는 이상적 범주를 넘어 내가 태어난 곳, 나의 성장의 근간이 된 성품의 본래가 깃든 곳이라면 의미하는 바가 다를 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어릴 적 추억이 심원(深遠)하여 물처럼 바람처럼 내 가슴을 적셔 줄 숨결이 살아있는 곳, 그 속에서 놀던 그때를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특히 농촌에서 태어나 도시에 사는 사람이면 더더욱 고향에 대한 애절함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심경을 떨칠 수 없어 고향의 벗, 동기, 문중, 친인척이 모인 향우회는 더욱 관계가 돈독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고향이란 내가 태어난 곳이라는 범위를 넘어 포근함과 온유함을 상징하는 특별함이 있다고 할까요. 그 특별함이란 우리가 어느 시기엔가는 반드시 찾아야 할 최초 마음이 시작될, 다시 태어남의 감각을 잇는 본성이 내재한 곳으로 의미를 부여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본성은 내가 태어날 때 체를 이루기 전의 의식 에너지이며, 누구나 이러한 에너지는 있는 듯하면서도 실체가 없고 실체가 있는 듯하면서도 형상으로 보이지 않으니 명확하게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뿌리로부터 줄기, 가지, 잎, 열매로 이어지는 사례를 보면 본성은 성장의 바탕이 된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향은 육신을 넘은 의식의 본래인 본성 자리이며, 내면의 성장을 이루는 근원이라는 보다 친화된 의미로서 인식한다면 고향은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함에도 근자에 우리 삶의 근황을 보면 고향에 대한 포괄적 인식은 고사하고 고향이 주는 아름다운 정서마저도 점점 사라지는 듯하니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빈집이 늘어나고 마을 전체가 비워지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빈집이 많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마음의 본래 고향이라 할 성품을 만나지도 볼 수도 없다는 방증이 아닌지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습니다. 

이러한 현실이야 문명이 엮어낸 변화라고 하지만, 고향은 공간의 안락함이 갖는 이미지 못지않게 영혼의 터전이요 본성 자리라는 인식마저 사라질 정도라면 세상인심이 어찌 되겠습니까? 문명이란 실체가 부의 축적에 매달리고 그러한 여파는 생존경쟁, 욕망 과잉을 양산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인간다움, 사랑과 자비의 본성이 잠재된 고향 순환의 길을 막고 말았습니다. 이런 까닭에 본래라는 의미조차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혼돈의 세상에서 고향은 명절 때만 오가는 시대 풍습의 고착된 이미지일 뿐이라는 아쉬움을 떨치기가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밖으로 펼쳐진 외형의 고향이 아니라, 내면의 고향을 탐구해 본다면, 또 그 속에서 우리가 진정 찾아야 할 본성을 만날 수 있다면 비록 고향에 가지 않더라도 고향의 향취를 어느 정도는 만끽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를테면 고향은 분노와 시비지심과 원망 속이라면 만날 수 없을 것이요, 포근하고 사랑하며 자비로운 마음이면 언제든 고향은 내 마음에 살아있음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심장이라 할 가슴에 손을 얹고 고향을 담으며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10분 정도 되뇌면 그 훈훈한 인심이 몸을 감싸며, 그 따뜻한 정기가 혈을 부드럽게 해주면서 멀어진 사이를 가깝게 하고, 오해와 불신의 감정에 쫓겨 차가워진 마음을 온기로 담아낼 수 있다면 우리에게 고향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요, 내 마음 안에 살아있음을 더욱 실감 나게 해주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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