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은 밥심’이라는 오랜 구전이 있다. 밥심은 ‘밥을 먹으면 생기는 힘’이라는 순우리말이다. 밥은 생명이다. 9월 중순 첫 수확한 햅쌀로 어머니가 지어 주신 밥은 입에서 살살 녹았다. 요즘도 햅쌀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 쌀로 밥을 해보면 맛있긴 한데 어릴 적 그때 그 시절의 맛과 같은 느낌은 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변화하고 있는 한국의 ‘쌀 문화’에 대한 깊은 성찰도 필요하다. 농사일은 자연의 질서에 의존하기에, 자본주의 경제체제인 시장의 논리보다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우리 인간 노동의 근본 영역이기도 하다. 쌀로 생명을 가꾸는 농민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스스로의 생명을 존귀하게 대하는 태도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매년 사상 최저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2021년 1인당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155.8g이었다. 밥 한 공기에 쌀 100g이 들어가니 국민 한 사람이 하루에 한 공기 반 정도만 먹는 셈이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하루 쌀값이 390원이다. 30년 전인 1991년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라는 것이다. 도시락과 김밥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도 양곡 사정이 이러하니 앞으로 나아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다. 아무리 쌀 소비 촉진 운동을 벌여도 밥을 잘 먹지 않는 것은 밥 말고 먹을 게 너무 많아서다. 비만과 당뇨 인구가 폭증하면서 흰 쌀밥으로 대표되는 탄수화물이 만병의 근원인 양 인식되는 탓도 크다. 

1930년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은 ‘살인적인 쌀값 폭락’으로 난리가 났다. 현미 한 섬(160㎏) 36~37원 가격이 18원50전까지 떨어졌는데 폭락의 원인은 대풍년이었다. 매년 평균 1300만석에서 1930년 그 해 1930만석이나 된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쌀값 대책에 대해 포기선언을 했다. 풍년이 축복이어야 했는데, 오히려 재앙이 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나 2022년 지금이나 풍년으로 즐거워야 할 우리 농민들의 마음이 쌀값 폭락으로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20㎏당 5만4228원 하던 쌀값이, 1977년 쌀값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가장 큰 폭인 24.9% 하락한 4만725원까지 떨어진 것이다. 현재 정부가 매입해 관리하는 비용만 수조원, 2005년부터 공공비축제 도입 후 소요된 재정이 23조원에 달하고 매년 쌀이 남아돌아 이제는 보관하는 창고도 없을 지경이라고 한다. 매년 평년 수준으로만 생산한다고 가정해도 20만t 정도가 초과 생산되고 있다고 한다. 벼 재배면적을 줄이는 등 정부나 농민을 위해서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해법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농사의 가치를 경제적 가격 정상화로만 접근하는 것이 온당한 것일까? 쌀값이 떨어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김지하의 시 ‘밥은 하늘입니다’의 한 구절을 옮겨 본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을 먹을 때는 고개를 숙이게 된다. 밥은 내 몸을 겸허하게 만든다. 쌀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깃들어 있고 농사는 생명을 가꾸는 존귀한 일이다. 농민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가치가 훼손된다. 농사는 생명을 살리는 땅과 더불어 하는 일이다. 먹지 않고 일할 수는 없다. 농업 노동을 가벼이 여기면, 삶의 뿌리가 말라간다. 농민이 없으면, 생명도 없는 것이다. 풍년을 이루고도 쌀값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있을 농민들에게 깊은 위로의 인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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