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 불어오는 선선한 날씨가 몸과 마음을 청량하게 해줍니다. 무더웠던 지난 여름을 생각하면 이처럼 선선한 날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고마움을 느낄 정서로서 갸름하면 아침저녁으로 다가오는 쾌적함과 결실이 주는 풍성함은 마음을 더욱 고조시켜 줍니다, 특히나 이때쯤이면 들판을 누렇게 장식하는 황금빛 벼 이삭이며 집 앞 골목길에 펼쳐지는 잘 익은 대봉감은 가을을 절정에 이르게 할 진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자연이 주는 정감(情感)이 우리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우리도 이러한 결실만큼이나 아름다운 풍요를 담아보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가을을 한층 빛나게 할 정서에서 마음에 담아낼 풍요와 결실은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아무래도 물질적이고 인위적인 것보다 더 아름다운 정신적인 무엇을 담아내는 것이, 풍요의 가치에 합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가을에 담을 풍요의 가치를 나를 나답게 하는 일, 나를 찾는 일과 나를 지켜내는 일로 가정해본다면 어떻겠습니까?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가장 아름다운 결실이면서 이 가을을 가장 풍성하게 이끌 가치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또한, 이러한 결실은 우리가 늘 보고 느끼는 일상의 경험 속에서도 얼마든지 끌어낼 수 있다는 잠재력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이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아무래도 우리의 마음속에 저장되어있는 오랜 습관이나 갖가지 불합리한 정서들을 해소해야만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중에서도 특히 생각이나 감정에 대한 초월적 신념에서 내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 생각과 감정들을 바라보며 “매일 매일 변덕스럽게 생겨났다 사라지는 생각과 감정은 진실로 내가 아니다.” “나는 생각이나 감정에 쫓는 것이 내가 아니라, 그 너머에 자리하고 있는 고요한 본성 그것이 본래의 나”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결실의 유용함을 알면서도 왜 이러한 본성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만약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식의 나를 버리지 못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모순된 생각이나 감정을 떨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 이에 대해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명상이나 묵상을 통하여 잠재된 습성을 버릴 수도 있고 다소 철학적인 방편입니다만 나는 누구인가? 내 속에는 어떤 신념이 자리하고 있는가? 나에게 있어 이미 굳어버린 채 성격이 되어버린, 습관 된 그것은 무엇인가? 내 속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이 무엇이길래 사념(思念)의 부정성인 분노와 두려움의 그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또 그것은 어떤 자극이 도래하였을 때 내 입에서 말이나 언어로 여과없이 튀어나오고 있는가 등을 살피면서도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일어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일희일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 만약 우리가 어떤 사유로 인하여 누군가 몹시 밉거나 원망스러울 때 당장 그러한 감정을 누구에게든 풀어버림으로써 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로 인하여 생겨나는 후유증은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가장 크게 피해나 상처를 입는다는 점입니다. 누구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곧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일이요, 누구를 원망하는 것은 자신을 가장 원망하는 일이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지 못하는 것은 곧 자신의 마음이 가장 편안치 못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입니다. 

심(心)과 기(氣)의 응집력은 입자와 파동으로 자신이 바라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움직이며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플라톤은 나를 보아 나는 본질적인 나의 적이며,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은 승리 중에서도 최대의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살피는 일에 게을리하지 말라고 말하고, 노자(老子) 또한,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사람은 훨씬 강한 사람이라고 일갈하고 있습니다. 

굳이 철학자의 어록을 빌리지 않더라도 풍요의 최대 결실은 결국, 나 자신을 살피는 일이라는 점에서 내 안에 잠재된 원망과 두려움 같은 과거의 인습을 버리고 수용하고 포용하며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 이것이 인생 최대의 풍요를 이루어낼 역사가 될 수 있다면 이 가을에 그만한 역사를 이루어내기 위해 더욱 정성을 모아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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