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松 감 충 효시인/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시인/칼럼니스트

눈물에 먹을 갈아 유배의 땅 서사할 때

당대의 대제학은 역사 한 켠 비통함에

봉천사 묘정비문도 울먹이며 썼으리 

필자가 문학에 눈을 떠 습작기를 거쳐 한국문단에 등단하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지금까지 내 고향 마을 죽림에서 유배객들이 남긴 이야기와 작품들은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 내 고향 마을 죽림 속에서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던 그 분들의 이야기와 작품들은 이전 연구단체와 연구자의 여러 문헌을 끈질기게 탐색하여 그 본류를 거의 찾았지만 그 작품들이 탄생한 디테일한 창작지와 마을의 전설과 융합되는 스토리텔링적인 비하인드스토리를 찾는 것은 마치 어떤 방대한 유적이 세상에 밝혀진 상황에서 수백 년이 흘러가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어떤 동굴 속에 이름 없는 탐험가가 혹시나 하고 들어갔다가 거기에 또 다른 소왕국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발견한 그러한 상황이라고나 할까? 

거시적인 망원경과 미시적인 현미경은 그 중요성에 있어서 어느 것이 더 크다고 할 수 없듯이 문학, 역사, 철학 이른바 문,사,철에서도 마찬가지다. 문학적인 차원에서는 웅대한 거시적인 것이 있는 반면에 미시적인 것이 근본일 때도 있다. 물론 역사와 철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세한 줄기세포, DNA, 핵 같은 것은 아주 미세한 것이지만 생명의 권원이며 코로나19와 같은 미세한 바이러스도 한동안 인류를 공포에 떨게 했다. 

우주 공간 드넓은 태양계까지 다가갈 수 있는 최첨단 과학시대에 마스크 한 개 구입하기 위해 수백 미터 줄을 서서 배급을 기다리던 인간의 나약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현대의 최첨단 의학으로도 어쩔 수 없는 그 바이러스의 존재에 대해서 종결짓지 못함을 볼 때 미시적인 것의 중요함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어진다. 

마찬가지로 죽림 속에서 마을의 전설, 구전으로 혹은 마을 어귀의 금석문 등으로 내려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오래전부터 마을에 대를 이어 살아오는 가문의 족보와 회관에 보관된 고서적과 마을 약사, 현존하는 지형지물과는 전혀 다른 오랜 지적도 등을 펼쳐놓고 내 고향 마을의 적재적소에 매치시켜 보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이는 아주 미시적인 자료로 접근하여 그 연원을 알아보고 더 큰 감동 스토리로 세상에 빛을 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시적인 것이 아닌 아주 큰 비석도 고향 마을에 전해왔으니 그것은 군문화재 3호로 등록되어 있는 봉천사 묘정비다. 비문을 자세히 뜯어보면 인문학적 관점에서 역사, 문화, 문학, 정치, 사회가 총 망라된 남해의 위대한 보물이요, 당대의 거유가 써내려간 한 편의 서사시다. 그 비문을 간직한 큰 비석이 서있는 자리도 내 고향 마을이고 그 비석의 주인공이 유배되어 살면서 백성을 가르쳤던 곳도 필자의 고향마을 죽산(竹山)이다.

남해에서 문학작품을 남긴 유배객 중에서 문학작품에 있어서는 단연 서포 김만중이 어느 유배객보다 위상이 높으나 다양한 계층과 접촉하면서 습감재(習坎齋)라는 서당을 열어 지방민에게 충신효제(忠信孝悌)를 가르칠 정도로 인문학적 큰 족적을 남긴 이는 소재 이이명 선생이다. 선생의 큰 사상과 가르침을 적은 봉천사 묘정비가 큰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난 2011년 12월 27일자로 봉강산 자락에서 남해유배문학관 야외공원에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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