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가배, 중추절 등으로 불리는 추석은 가을의 한가운데 달이자 음력 8월 보름의 뜻을 지닌 연중 으뜸인 명절이다. 추석의 유래야 어떻든 추석은 오곡이 익는 풍성한 계절을 기념해 ‘이날처럼 잘 먹고 잘 입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과 바람’이 담겨 있다. 특히 추석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것이 중요 행사 중 하나로 손꼽힌다. 산소를 찾아 벌초하고, 햇곡으로 빚은 송편과 각종 음식을 장만해 조상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며 추석과 같이 풍성한 삶을 이어 가길 기원한다.

추석에는 식구들이 다 모인다. 우리 부모님께서 자식을 여럿 낳았고, 다들 결혼하여 손자들도 많아 대부대이다. 시집간 누이들도 차례는 각자 집에서 지내지만 다음 날에는 모두들 모이는 게 우리 집 전통이다. 몇 년 전부터 부모님 두분 모두 거동이 불편할 정도여서 명절에는 더욱 애틋한 마음으로 모이는 것 같다. 남해에 거주하는 입장에서 자주 부모님을 뵙지만 남해에서 많이 떨어진 지역에 있는 형제들은 명절 때나 뵙게 되니 꼭 찾아오는 것이다. 

추석 아침에는 간소하게 차례를 지낸 다음 그 음식을 나누어 먹고 술도 한 잔씩 나누고, 밀린 이야기의 꽃을 피운다. 어릴 적 추석에는 친척 모두 큰집인 우리집에 모여 차례도 지내고 음식도 함께 먹었다. 벌레가 끼지 않은 은행나무 제기들을 오랜 세월동안 썼지만 잘 관리를 해서인지 늘 반짝거린 기억이다.

올해와 같은 좀 이른 추석의 경우 논에는 아직 벼들이 수확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는데, 어린 시절 그때는 메뚜기들이 많았다. 메뚜기를 손으로 훑다시피해서 잔뜩 잡아 장작불에 구워먹기를 즐기곤 했다. 경리정리 하기 전 그 때는 지금같이 오염되지 않은 도랑에서 조잡하게 만든 그물로 붕어며 미꾸라지를 잡기도 했는데, 이도 역시 구워먹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은 명절이 되어야 새 옷을 사 입고 새 양말, 검정고무신을 사 신었는데, 그게 일년 중 새 옷을 얻어 입는 유일한 기회였던 것 같다. 형인 나는 새 옷을 사 입히는데 동생은 왜 명절에 새 옷을 왜 안사주시나 늘 불만을 제기 했지만, 1, 2년 입은 내 옷이 작아서 입지 못할 정도가 되면, 동생의 옷으로 바뀌고 하는 걸 알고는 더 이상 하소연 해봐야 소용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 후 50년 이상의 세월이 더 흐른 것이다. 

고향 남해가 그리고 명절의 풍속이 어릴적 그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했다. 크지도 않은 한국 땅에 살면서 초등학교 친구들과 사촌들이 전국에 뿔뿔히 흩어져 각자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시절과 같이 즐거운 추억을 같이 할 수가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식구들은 추석에 부모님 집에 꼭 모인다. 추석과 설날에 부모님 집에 모두 다 모여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다. 코로나로 정부에서 ‘고향 안 가기’ 캠페인을 했지만, 자식들은 못와도 형제들은 명절 때 부모님 집을 찾았다. 올 추석은 손자들까지 모두 포함해서 부모님을 찾을 것이다. 

추석 명절이 되면 며느리들은 소화불량에다 알 수 없는 두통까지 생긴다. 어릴적부터 지켜본 어머니의 삶을 생각해 보면 여성들에겐 명절이 아닌 ‘노동절’이다. 부엌일에 대한 부담은 철저한 남녀불평등 명절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절 문화가 세대가 바뀌면 저절로 바뀐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국여성민우회의 즐거운 명절 보내는 방법을 보면, 가족 모두가 함께 일하고, 함께 놀 수 있는 명절을 만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급선무다. 작은 일부터 바꾸겠다는 마음가짐 특히 명절에 여자 일, 남자 일은 따로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장보기, 음식 만들기, 차례 지내기, 설거지를 가족이 나누어 함께 한다. 일할 때도 쉴 때도 모두 함께한다. 

또한, 명절을 꼭 큰 집에서 보내라는 법은 없다. 장남 차남 모든 자녀가 돌아가며 지내고 설날은 시댁가족과 함께, 추석에는 친정가족과 함께 지내보는 식의 ‘열린 명절’을 지내는 방법이다. ‘조상을 기리고, 가족 간 우애를 쌓는다’는 아름다운 명분 뒤에, 여성들은 노동으로 내몰리고, 오랜만에 만난 가족 간 갈등이 증폭되는 명절의 역기능도 분명히 실재한다. 

흔히 세시풍속을 얘기할 때면 역사와 전통을 들먹이지만, 풍속은 시대에 따라 변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실제로 명절풍속은 항구적이지 않다. 시대에 따라 변하고 변해야 한다. 비대면 명절이 코로나 비상시에만 반짝했다가 사라질 것 같지 않은 새로운 차원으로 바꾸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 

누군가의 헌신에 기대지 않고 온 가족이 함께하는 명절. 모두가 즐거운 것이 되는 개개인을 존중하고 소통하는…, 2022년 추석은 그런 새로운 명절 풍속으로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즐겁고 행복한 가족은 해체되지 않을 것이므로 음식은 먹을 만큼 간소하게, TV에 벗어나 가족과 함께 남해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다. 즐거운 추석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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