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松 감 충 효시인/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시인/칼럼니스트

읍성을 깔고 앉은 마음이 편안한가?

영령이 끌어 올린 그 성벽 묻은 후손

지금도 늦지 않으니 천우신조 따르라  

남해에 유배문학을 남긴 여섯 분 중 서포 김만중과 자암 김구를 뺀 나머지 네 분의 적소가 모두 남해읍성 주변임을 생각할 때 국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중량감은 대단하다. 그래서 이곳을 포함한 노도 문학의 섬과 약천 남구만이 많이 들렸던 용문사와 자암 김구의 적소가 있었던 노량을 기반으로 유배문학의 테마 고을로 발전시킨다면 그 풍부한 자원은 전국 어디에서도 남해를 따라올 수가 없을 것이다. 남해유배객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서포 김만중은 3여 년간의 유배생활에서 우리 국문학사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는 시, 소설, 수필, 평론을 남겼고 그 외의 다섯 분도 수많은 시가, 기행문, 부, 한시 등 국문학사에 그 비중이 높은 대작들이 즐비하니 어찌 남해를 유배문학의 보고라 이름하지 않겠는가?

보통 유배문학은 임금을 그리는 시가류가 대부분인데 비하여 남해의 유배문학은 소설로써 숙종을 깨우치게 하고자 한 사씨남정기는 물론 남해의 풍속을 그린 기행문인 남해문견록, 평론집 서포만필, 경기체가 화전별곡, 수필에 준하는 윤씨행장, 박성원의 수많은 한시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기반으로 한다. 권력도 부귀영화도 모두 빼앗긴 채 ‘유배(流配)’라는 백척간두에 선 절망적인 삶 속에서도 문학을 꽃 피웠던 불멸의 혼들은 오늘도 그 들의 창작지를 찾아 배회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그 문학의 혼 불을 내걸었던 읍성을 복원할 때라고 본다. 읍성을 복원하게 되면 우리 군민은 성곽을 가진 문화군민으로서의 위상도 찾게 되고 성벽을 더듬으며 전설 깃든 마을 언덕과 골목과 죽림 속으로 들어가서 오래된 역사와 당대의 위인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유배(流配)의 고도(孤島)에서 시혼(詩魂)을 부르는 소리’가 세월을 건너 뛴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 곁으로 오고 있음이니 그들의 맑은 영혼을 맞을 준비를 서둘러야 할 때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함에 이 글을 쓰면서도 안타까움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성곽이 있는 문화도시는 벌써 그 품격이 달라진다. 관광객이 서울이나 수원, 진주와 고창, 낙안, 해미읍 등을 찾는 이유도 바로 성곽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08년 9월 초에 천우신조로 발견된 천혜의 보물 남해읍성을 도로 묻은 문화재 향유능력 빈곤의 불명예를 씻고 지금이 남해읍성을 가능한 한 많이 노출시킬 절호의 기회다. 읍성의 중심지였던 군청과 남해초등학교에 성곽과 유물이 많이 묻혀 있음이 지난번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이미 많이 진행된 읍 시가지 도시계획은 개발 위주인 것 같다. 개발은 좋다. 하지만 문화재가 있는 곳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여러 사정으로 원형을 노출 못 시킨다면 적어도 역사적인 상징성이라도 남겨 놓아야 한다. 읍성이 분명 존재했고 그 성벽이 발굴되었는데도 모른 채 한다면 그건 조상들의 위업을 너무나 가볍게 보는 처사다. 

성곽의 발견 당시 군수님은 여러 사정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성곽의 출입구인 4대문이라도 복원을 해서 읍성의 존재를 남겨야 함을 피력한 인터뷰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새로 선출된 군수님도 대역사 남해군청 청사를 신축하는 중심에 선 당대의 목민관으로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시고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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