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3일은 남명초등학교가 개교 백 주년을 맞이한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개교 백 년의 최초 시기는 대체로 일제 강점기 시절이어서 설립의 취지는 아무래도 정신 계몽과 민족정기를 심어준다는 차원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지역적으로도 백 년의 역사를 지닌 학교가 곳곳에 있어 우리 고장 남해도 예외가 아닌 듯합니다. 그만큼 웅비찬 학습 도장으로서의 역활 못지않게 민족의 의식을 일깨워주는 데 일조를 하였다는 점에서 백 년의 의미가 더욱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견지하면서도 시대 변화의 추이에 따라 지금은 예전에 비해 학생 수가 많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그래도 초등교육의 맥을 이어온 백년 남명의 역사는 역사적으로나 학문적으로도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남해 그리고 남면의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필자 역시 60년대 중반, 남명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소기의 학업을 시작한 바 있습니다. 당시를 회상할 때 기억나는 것은 통학의 길목인 홍덕정에 오일장이 들어서는 날이면 유달리 지각이 잦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일갈하던 한마디가 ‘오늘도 장 구경했냐’며 야단치던 모습이 종종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만큼 호기심과 설렘이 많았던 소년 시절이었지만, 아쉽게도 2학년까지만 다니다 부산으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졸업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중간에 그만둔 학생은 동문의 요건에 해당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년 시절의 추억거리로서는 무척 재미있는 등굣길이었습니다. 그런 추억으로부터 오십 년, 이제는 반듯한 나이에 희끗희끗한 머릿발이 세월의 무게감을 나타내지만, 여전히 남아도는 만학(晩學)의 길에 비친 소년기 남명 시절의 추억을 동심에서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귀촌하여 남면에 살고 있어 그래도 잠시나마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학교가 백 주년을 맞이하였다는 소식을 접할 때 그 기쁨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당시의 추억을 가슴에 간직한 채 몇 년 전 우연히 마을특화교육의 일환으로 명상 교육을 실시하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첫 교육 장소가 하필 모교인 남명초등학교가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때의 그 감동과 설렘은 마치 오십여 년 전의 학창 시절에 느꼈던 설렘만큼이나 컸다고 할까요. 50여 년 만의 모교 방문 그리고 명상교육. 아무리 짧은 인연이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만날 것이라는 믿음이 현실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내 속에 너가 있고 우리가 있음으로써 가고 오는 것을 조화롭게 한다는 순환의 질서에 공감하게 됩니다. 

50여년 전의 그리움이 50여 년 후에 연결되어 드러난 연관성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그물망처럼 엮어진 의식의 순환이라는 점을 인식하면서 말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생명의식은 초 이심전심의 작용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미치게 한다는 영적 기류의 대조짐이라는 것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비단 필자뿐만이 아니라 백여 년 동안 수많은 남명의 학생 역시 짐작과 예감을 통하여 학습의 의지를 불태우며 축적한 경험과 학습을 통하여 내적 성장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백 년은 또 새로운 도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내공이 쌓인 힘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합니다. 

다만,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른 지금, 마음과 몸을 조율한 학습의 정도를 어떻게 설정하여야 하는가를 화두로 삼을 정도로 세상이 너무 복잡해지고 혼돈에 빠져 예측 불가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를 정화하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이 있겠으나 앞으로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성(性)과 심(心)과 신(身)을 탐구하는 과정으로서의 치유의 학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즉 내(본성 자각)가 중심이 되어 겉(성격, 감정)을 바라보아 다스리고 내 속에서 모든 것이 포용(일치와 합일의 의식) 될 수 있도록 움직여지는 치유의 인간학이야말로 향후 백 년을 아니 천년을 가로지를 학(學)이 될 수 있다는 점에 그 의미를 유추해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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