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松 감 충 효시인/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칼럼니스트

기왓장 한 개로도 사찰 하나 들어서고

성 밑돌 한 개로도 장성을 엮는 요즘   

우리의 남해읍성을 도로 묻은 불상사

서포 김만중과 자암 김구를 제외한 나머지 남해에서 유배문학을 남긴 유배객들은 모두 읍성이나 성 주변이 그 적소로 전해 온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남해읍성, 유배문학의 산실인 이곳을 2008년 9월 초에 읍내의 시가지에 도로를 내다가 대규모의 남해읍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론이 분분하였다. 천우신조로 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이 읍성을 대대적으로 발굴하여 문화재적 읍성의 위상을 살려 관광지로 발돋움해보자는 여론이 들끓었다.

적어도 몇백 년 전의 성이 발견됨은 문화재적 관점에서 엄청난 보물이 출토된 사건이었다. 문화재청에서 내려오고 관계기관의 자문을 받으면서 군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오랜 절차 끝에 도출된 결론은 도로 묻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의 문화재 향유능력의 빈곤과 발굴에 소요되는 엄청난 규모의 비용에 아예 손을 들어버린 것이다. 필자는 그 당시 이러한 결말에 대해 통탄 수준의 글을 여러 지지(紙誌)에 발표하였고 필자의 시집에도 실었다. 성벽 주위에 보호재로 채우고 그 위치를 표시하여 훗날을 기약한다고 했지만 도로가 나서 아스콘이 깔려버리고 주변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 버리는 상황에서 발굴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벽 주위를 보호재로 채웠다니 지금이 기회다. 이유 불문하고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은 무조건 살려야 한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윤택하더라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조상님의 역사적 숨결이다. 읍성을 묻어버린 그 불명예를 씻을 때가 온 것이다. 군민들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문화재는 단순히 돈으로만 계산할 수 없는 위대한 우리 조상의 숨결이다. 그 숨결을 살려내지 못하고 도로 묻는다는 것은 참으로 낯 뜨겁고 몰지각한 일이다. 좀 불편하더라도 도로는 다른 곳으로 내고 그곳을 복원하는 대승적인 조치는 왜 못했을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훗날 후손으로부터 지금 이런 상황을 엮어간 우리에게 근시안적인 못난 선조라는 낙인이 찍히기 전에 하루빨리 멀리 보는 혜안을 가지는 것만이 보물섬의 위대한 보물을 캐는 남해 역사 이후 최대의 업적이 될 것이며 그 시너지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읍성 주변의 시가지 정비사업이 많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 상태에서 군데군데 성곽의 흔적을 최대한 발굴하고 지금 못하는 부분은 훗날에라도 영원히 묻히지 않도록 그 꼭지점을 최대한 끌어 올려두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물론 해당기관에서 이런 것을 당연히 염두에 두고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시가지 정비사업을 추진했으리라고 믿지만 항상 개발에 더 비중을 두는 우리 시대의 고질적인 개발지향성에 문화재를 아끼는 사람들은 항상 걱정을 앞세운다. 전국 도처에서 그런 몰지각한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많이도 목도했기 때문이다. 

문화재를 극진히 소중히 여기며 그 지방의 트레이드마크로까지 활용하여 문화재 발굴 보존과 관광객 유치로 지방경제의 활성화 달성에 성공한 지방의 사례는 여러 곳이 있다. 어떤 곳은 행정구역상 애매한 경계선에 걸쳐 있는 비석 하나를 자기 고장으로 끌고 오려고 온갖 힘을 다하다가 해결을 못보고 아직도 다투고 있는 곳도 있다. 우리 남해는 그럴 필요는 없지만 읍성 옛터에 이미 민가나 각종 시설이 많이 들어차 읍성이 묻혀있기에 발굴이 쉬운 것은 아니다. 먼 미래를 보는 군민들의 혜안이 필요할 때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