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松 감 충 효
시인/칼럼니스트

당산의 매화향기 적셔 본 분들이여
그 향기 읍성 돌아 창선으로 건너갈 때    
봉천과 강진 바다는 비몽사몽 흘렀네

남해유배문학관 뜰에는 큰 비석이 서 있다. 높이 260cm, 폭 83cm, 두께 32.5cm로 이른바 봉천사 묘정비다. 봉천사 뜨락에 있던 봉천사 묘정비는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것으로 보이며 봉천사 묘정비만 읍 공용터미널 맞은 편 봉강산 자락에 있다가 남해 유배문학관으로 옮겨졌다. 

그 습감재 서당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죽산마을 뒷산 당산에 매부를 짓게 된 매화 두 그루의 후손인 매화나무가 크나큰 매원(梅園)을 이루어 이 고장의 자랑거리였다. 이 매원의 향기는 창선 쪽에서 불어오는 동풍에 실려 읍내를 적시고 망운산을 거슬러 오른다. 그렇게 차오르던 매향은 해 저물쯤에 다시 망운산에서 강진바다로 향해 부는 서풍으로 바뀌어 다시 읍내의 저녁밥 짓는 연기와 함께 강진바다 건너 맞은편 창선도까지 그 매향을 흘려보냈다.

어느 해 고향을 찾은 필자는 태어나서 자란 죽산마을의 뒷산 그 우람하던 매원의 추억을 찾아 마을을 둘러싼 대밭을 헤치고 가봤으나 그 전설적인 매원이 있던 곳은 대학 부속건물이 들어서 있었고 매원을 둘러싸고 있었던 낙락장송들만 강진바다 푸른 바람에 그 고절의 송뢰(松籟)를 전하고 있었다. 고교 시절 그 낙락장송의 굽은 허리에 샌드백을 매달고 새벽마다 죽림을 뚫고 올라와 파천들, 하마정들, 강진바다를 내려다보며 같이 체력 단련하던 노래 잘하는 김철수 사장의 얼굴이 불현듯 떠올랐다. 

우리 고향 남해는 그 옛날 명문거족 고관대작들이 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를 많이 왔는데 서포 김만중, 소재 이이명, 자암 김구, 약천 남구만, 후송 유의양, 겸재 박성원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 중에 서포 김만중과 자암 김구를 제외한 모든 고관대작들이 이 곳 읍성 주변에 적소를 정하고 백성들과 가까이 지냈다. 

또한 겸재 박성원은 250여 년 전 남해의 풍속이나 실상을 담은 300편이 넘는 한시를 그의 문집 광암집 ‘남해일기’에 남겼다. 박성원의 시에 유배생활을 하던 거처의 서쪽에 망운산이 있고 바다에 그 그림자가 드리워진다는 내용이 있으며 거처의 죽림에 대나무를 의인화하여 지은 시가 많은 것을 보며 오랜 옛날부터 동네 주변에 대를 많이 심어 북풍을 막았던 죽산리(竹山里)에 그의 적소가 있었음을 추정해본다. 

이 죽산리(竹山里)라는 지명은 여러 문헌에 많이 발견되는데 경상도 지리지에서는 남해읍성의 이전 과정에서 그 중심지로 적혀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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