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그 정도를 사람의 맨눈으로 식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처럼 빠른 시대에 익숙해진 흔적은 이미 드러난 형(形)이나 색(色), 질감(質感)과 성질 등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금세 또 다른 신품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날이 새로운 것이 생겨나 더욱 편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또 다른 형이 나오기까지 그 사이에서 드러나는 조급함입니다. 이 조급함이 기다릴 줄 모르는 성격, 좀 더 차분해지는 여유로움마저 사라지게 하여 이것이 우리 사회의 갖가지 결핍 현상을 초래하게 하는 원인인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삶의 정신적 지주가 될 좀 더 차분히, 좀 더 자신을 돌아볼 여유에서, 그리고 내 마음의 정도가 어떤지 살피면서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아가는 길이 제시되어야 하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입니다. 

이러한 방편에서 유의미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이 문화와 예술입니다. 기존의 것을 전혀 새로운 형상으로 변모시키는 창조력, 그러면서도 심(心)과 미(美)와 지성(知性)을 겸비하면서 여유와 넉넉함을 지닐 문화와 예술이야말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정서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문화와 예술은 어느 시대, 지역, 분야를 막론하고 마음을 더욱 건전하고 차분하게 이끄는 장르로 활용되어 심신을 건강하게 이끄는 촉매제가 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고장 남해도 예외는 아닙니다. 예(豫)와 감성이 어우러지는 활동들이 눈에 띄게 늘어 공간을 활용한다든지 빈 여백이 있으면 벽화를 그린다든지 혹은 설치 미술을 하여 이미지를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열정을 곳곳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설천면에서 개관한 눈내목욕탕 미술관 개관은 이러한 변화를 확연히 느끼기에, 충분한 것이어서 신선한 감동을 주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지역 주민과 지역 예술가, 공무원이 합심하여 목욕탕으로 사용하던 공간을 미술관으로 바꾸어 개관하게 된 것입니다. 그 어느 누가 목욕탕을 개조하여 미술관으로 만들리라고 예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의 몸을 씻어주던 목욕탕을 개조하여 정신과 영혼을 씻어줄 공간인 전시장으로 재탄생했다는 점은 필자의 시선을 이끌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요즈음처럼 빠른 시대에 그래도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설천면의 열정에 크게 고무되었음은 물론 이러한 아이디어를 면 소재지마다 소담한 문화공간을 창안할 발상력으로 공유한다면 아마 전국적 명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변화된 실상을 보면 농업과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형태도 점점 변화되어 이미지를 정착화시켜 나가는 감성 시대에 발맞추고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변화의 추이를 외형적으로 보면 형과 색의 조화라는 점에서 시각적으로 감각적으로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감지하는 심성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각 분야에서 문화나 예술을 접목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삶을 밝게 해주는 청량제가 된다는 점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일조할 것입니다. 그것은 예와 미와 감성에다 실용성마저 겸비함으로써 마음을 정화할 단계를 한 단계 더 높여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이처럼 소중한 문화 예술의 자산을 살필 여력이 있는가를 생각하면 아직은 요원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웬일일까요. 그 요원함이란 삶의 지평을 열어줄 감성과 지성에 대한 이해 부족 그리고 마음을 정화한다는 차원에서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인식 부족도 원인일 것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가시적이든 비가시적이든 오감(五感)을 충족시켜 줄 문화와 예술의 종사자는 영혼을 이끄는 영적 지도자라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창작자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유에 공감하는 필자는 이날 눈내 목욕탕 미술관 개관에 참여하고 돌아오던 중 접한 또 하나의 소식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얼마 전 필자와 인연이 된 문성주 조각가의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수년간 해외에서 작품 전시회를 많이 한 탓에 국내보다 외국에 더 알려진 작가입니다. 십여 년간 유럽에서 활동하며 2001년 국제 조각 심포지엄 베로나에서 일등 상을 받기도 한 그가 남해 온 것은불과 몇 년 사이입니다. 전국을 돌면서 작업장을 알아보든 중 유독 남해가 좋다며 남면 임진성 앞에 작업장을 마련한 후 유배문화관에서 전시회를 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최근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작업장을 옮기게 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고 또 얼마 전에는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하였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래도 남해가 좋다는 작가의 염원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이곳에서 작품 활동이 활발히 이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봅니다. 

작가는 예민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민하다는 것은 아무리 험하고 거친 재질이라도 아름답게 가꾸려 변형시키려는 감성 의지, 또한 그 아름다움을 더욱 아름답게 하려는 지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뇌가 있기에 거칠고 삭막한 감정, 분노와 두려움에 젖은 대중일지라도 능히 이를 감내하며 아름다움에 동화되는 기쁨을 만끽하는 것입니다. 공과 사의 현실성을 초월하여 남긴 열정적인 작품들이 그리도 오래가고 사람들이 공감하게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그러한 길에서 만나게 된 눈내목욕탕 미술관 개관이나 문성주 작가의 고뇌는 이를 승화하기 위한 방편에서, 때로는 우리가 겪어야 할 희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가슴에 메아리쳐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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