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류관 제거의 어려움과 환자의 식생활에 대하여(2)
위류관 제거의 어려움과 환자의 식생활에 대하여(2)
  • 남해신문
  • 승인 2022.04.2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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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무창선면 온리원 펜션 / 시인ㆍ수필가
하태무
창선면 온리원 펜션
시인ㆍ수필가

집에 오니 토ㆍ일요일을 제외한 날, 하루 네 시간 간병인이 배정 되었다. 그나마 숨을 쉴 수가 있었지만, 환자의 식사 준비는 필자의 몫이니 칼로리에 맞도록 식사를 조절하는 일이 가장 큰 일이었다.

위류관을 달고 왔으니 소독 또한 신경을 써야 했는데 어쩌다가 그만 위류관의 통로가 막혀 음식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놀라서 경상대병원으로 연락을 하니 응급실로 오라고 했다. 119를 불러 응급실로 갔지만 더 위급한 환자를 먼저 보는 제도 때문에 고령의 내 환자는 자꾸만 뒤로 미뤄지고 계속 기다려야만 했다.

여름철이라 덥기는 더웠고 내 환자는 자꾸만 보채고 119 직원은 환자를 인계하고 가야 하므로 몇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 미안하기만 했다. 병원으로 갈 때 119직원은 경상대로 가지 말고 다른 병원에 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던 필자는 환자의 병력이 다 입력된 병원이라야 될 것 같다며 경상대를 고집했던 게 미안할 정도였다.

119는 그걸 다 알고 더 안 기다려도 되는 병원을 가면 안되겠느냐고 물었던 거였다. 세 시간을 기다려 겨우 응급실로 들어가긴 했다. 본인 부담인 급성 코로나 검사를 하는데 16만 원이나 비용이 들지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응급실에 왔으니 응급으로 위류관을 보아야 해서 그렇다는 것. 할 수가 없으니 검사를 했는데 결과가 나왔는데도 환자는 아무도 봐주지를 않았다. 결국 입원을 하고 다음날이라야 봐 줄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본인 부담인 급성 코로나 검사는 왜 했느냐고 물었다. 의사가 너무 바빠서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수요일에 응급실로 입원한 환자를 입원시켜 사흘 만에 의사가 환자의 위류관을 봐준다고 왔다. 필자는 입으로 죽을 잘 넘기니 위류관을 제거해 줄 것을 요청했다.

호흡기 내과 주치의가 제거해주지 말랬다고 했는데 나는 문제가 발생해도 이의 제기를 하지 않을 테니 반드시 제거해 달라고 떼를 쓰다시피 했다. 응급실로 온 사람을 사흘이나 방치하는 법이 어디 있냐고 계속 사정을 했는데도 바쁘다고 오지 못했던 의사는 환자가 입으로 잘 먹는다는 사실을 내게 확인하고는 순식간에 위류관을 제거해주었다.

그런데 그 배에 내었던 구멍의 상처는 외과에서 치료하고 퇴원을 시켜준다고 했다. 그 상처 때문에 CT 촬영을 세 차례를 하고 확인을 했는데도 외과 의사는 나타나지 않았고 주말을 넘기고 있었다. 환자는 퇴원을 시켜달라고 보채기 시작했고 금식한 지 나흘을 넘기고 영양제는 계속 새어 시트가 다 젖도록 불편했다.

필자는 금요일 밤에 집에서 직접 소독을 할 테니 퇴원시켜 달라고 졸랐다. 위류관을 제거하고 입으로 잘 먹는지 확인해야 보내준다는 했는데 나는 기어이 퇴원을 해달라고 떼를 쓰다시피 했다. 외과 치료는 퇴원했다가 다시 외래로 와서 치료를 받겠다고 했다. 

금요일 밤 내내 인터넷으로 위류관 제거 후 처치에 대해 찾아보았지만 거기에 대한 정보는 없었고 한일 병원에 전화했을 때, 환부는 소독만 하면 시일이 지나면 저절로 아무니 문제가 없는 걸로 안다는 조언을 얻었다.

사실은 좀 두려웠지만, 토요일 당직 의사는 입으로 먹을 수 있었다면 조심해서 입으로 먹이면 된다고, 그리고 그 다음 주 화요일 외래로 외과에 예약을 해 주었는데 남해에서 경상대로 아침 9시 20분의 예약은 불가능한 시각이었다.

피검사를 두 시간 전에는 해야 했고 집에서 한 시간은 걸려야 되는 거리니까, 새벽 5시에 중증 1급 장애자를 깨워 준비를 해야만 그나마 치료를 받으러 갈 수 있었기 때문에 필자는 예약을 취소하고 집에서 소독을 감행했다.

매일 두 차례 소독하고 거즈를 붙이며 치료를 거듭한 결과 한 달 만에 상처는 다 나았고 뱃구멍처럼 흉터 자국만 남아 있다. 처음 퇴원하고 한 사흘 정도 배변이 원활하지 못했는데 부추를 계속 갈아서 죽을 쑤어 먹이고 조금씩 적응하며 조심해서 먹였더니 지금은 먹지 못하는 게 없을 정도로 입으로 잘 먹는다.

다만 입맛이 까다로워 돼지국밥은 반성시장에서 사야 하고 복어국은 누구네 집의 것을 먹어야 하며 짜면 짜다 싱거우면 싱겁다 귀신같이 맛을 알아 시집살이를 시킨다. 아프지 않을 때도 국을 먹다가 식었다고 다시 두어 번은 데우러 나가야 했던 사람이니 친구들은 그 책임은 다 필자가 버릇을 못 들인 탓이라고 말한다. 

아들은 매일 아침, 작은 고무보트를 타고 오로지 바다로 낚시를 나간다. 매일 바다에서 갓 건진 생선으로 회를 뜨고 지리를 만들어 아비의 입을 즐겁게 만든다, 

위류관 제거에 관한 정보가 없었던 건, 위류관은 거의 생명이 꺼져가는 환자가 죽을 때까지 입으로 삼키지를 못해서 달고 가는 기구라 제거하는 일이 거의 없어서일 거라고 했다. 다만 3개월 내지 6개월에 한 번 줄을 교체만 할 뿐이라고.

그런데 지금 내 환자는 제거해주지 않으려는 병원 측의 의견을 무시하고 위류관을 제거한 채 9개월을 잘 견디고 있으며 앞으로도 견딜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입으로 음식을 씹어 먹을 수 있고, 달고 시고 맵고 짜고 싱거운 오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깨닫는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답게 감사한 하루를 지내고 있다.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었나니 ​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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