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선의 고사리 

이토록 간절히 봄비를 기다린 적이 있었던가. 50년 만의 겨울 가뭄이 석 달째 이어졌고, 전례 없이 건조한 날씨 탓에 동해안에선 사상 최대 산불이 발생하는 상황 속에서 얼마나 기다렸던 비였던가. 길고 긴 겨울 가뭄 끝에 마침내 단비가 내려 대지를 적셨다. 충분한 강우량은 아니었지만 모두가 노심초사 고대했던, 말 그대로 단비다.  

고사리는 꽃 대신 포자로 자손을 퍼뜨리는 민꽃식물이다. 알록달록 꽃은 없는데도 꽃말은 있다. ‘유혹’이다. 고사리 새순이 땅을 뚫고 돋아나는 매년 3월 말이면 마음은 달뜬다. 봄은 고사리로 시작되는 것 같다. 봄비 후 찾은 창선 가인 고사리 바래길은 따스하긴 했지만 봄은 그 곁을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따뜻한가 싶으면 찬바람이 불었고, 고사리 바래길 제일 높은 곳을 향하다 겨울옷을 꺼내 입을라치면 등줄기로 땀이 솟았다. 창선 고사리는 제사상에 반드시 오르는 산나물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채소이다. 고사리는 우리 창선에만 있는 건 아니다. 제주도와 국내 대부분의 지역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양치류 식물이다. 

보통 4~5월에 어린 고사리 순을 꺾어서 데치고 말려 묵나물로 먹는 경우가 많은데, 봄에 나는 햇고사리야 말로 별미 중의 별미다. 고사리는 ‘산에서 나는 쇠고기’라고 불릴 만큼 영양소가 풍부한데, 머리를 맑게 해주는 효능이 있는 것은 물론 혈액도 맑게 해 줘 각종 공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좋은 식품이다. 

청정 섬에서 자라난 창선 고사리는 뛰어난 맛과 식감으로 사랑받고 있다. 풍부한 해풍과 따뜻한 햇볕의 영향, 고사리 생산에 적합한 양토 및 사질토양으로 이루어져 있어 고사리의 향이 진하며, 맛이 뛰어나고 식감이 부드러운 품질 특성을 가지고 있다. 창선 고사리는 영양성분에서 조단백질 33%, 수분 32.6%, 조 지방 1.9% 무기질 성분등에서도 다른 지역 고사리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따라서 성분으로 본 창선고사리는 매우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가인 고사리 바래길 옆에 살짝 고개를 들고 올라온 고사리를 보니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이 모처럼 느껴지는 편안함이다. 이번 봄이 마스크를 써야 하는 마지막 봄이기를 기대한다. 

장례 문화의 변화, 4일장

지난 주 연죽의 추모누리 장례식장을 찾았다. 창원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지인이 문자로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며 보낸 연락내용 중 ‘3일장’이 아니고 ‘4일장’을 치른다고 했다. 아마 일정을 착각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장례식장을 찾아서 확인 해 보니 4일장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어찌된 일인가 싶어 알아 보니까, 코로나19 사망자와 계절적 요인으로 환절기 사망자가 함께 늘어나면서 빈소, 화장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장례식이 3일장 대신 4일·5일장으로 치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문을 했던 그 날 추모노리를 찾은 유족이 있었는데 빈소 차릴 공간이 없어, 자리가 비면 오기로 하고 집에 하루 있다가 들어 온다는 것이다. 

우리의 장례문화는 3일장이다. 빈소 마련, 부고와 조문객 맞이, 화장·매장 등 사회적 관습과 경험치가 만들어낸 것이다. 현행법상 화장·매장을 사망 뒤 24시간 후로 제한한 것도 한 요인이다. 최근엔 가족 중심의 2일장도 하고 있지만 대부분 3일장이다. 

장례식이 3·5·7일 홀수 날짜인 것은 고대 동양사상인 음양오행설의 영향과 유교적 관습에 따른 것이다. 전통적으로 홀수는 양수, 짝수는 음수다. 특히 3은 1과 2라는 음·양의 합으로 완전한 숫자로 인식됐다. 하늘·땅·사람(천지인)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리 남해만이 아닌 전국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사망자가 급증하고 환절기라는 계절적 요인까지 겹치고 부산 등지 향우 유족들까지 남해 연죽의 화장장으로 오면서 3일장 대신 4·5일장이 치러지고 있다고 한다. 장례식장의 빈소나 화장장을 구하지 못할 정도로 장례시설이 포화상태라고 한다. 

이대로 계속되면 4일장이 아닌 5일장도 해야 할 실정이라고 한다. 코로나19 사망자가 전국에서 하루 250명을 넘어서며 발생한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고 한다. 돌아가신 부모의 죽음을 맞은 유족들로서는 정신적으로 힘든 가운데 4일장을 억지로 해야하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허례허식이 많아 장례의례도 간소하게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지만, 마지막 가는 길이라는 마음으로 여전히 가장 중요하게 처리하는 의례다. 그런 중요한 장례문화까지 코로나19가 흔드는 것이다. 새삼, 먼저 간 죽은 자를 추모하고 남아 있는 산 자를 위로하는 장례의례의 본질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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