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태 무창선면 온리원 펜션 / 시인ㆍ수필가
하 태 무
창선면 온리원 펜션 / 시인ㆍ수필가

이렇듯 경상대학병원에서의 24일은 죽음의 여행길이었다. 짧다면 짧은 스무나흘 동안 온갖 느낌이 내 가슴을 회오리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내 말 한마디면 그의 목숨이 이미 저 세상으로 가버릴 뻔했던 아슬아슬한 경험. 

“동의서에 사인하세요” 그 사인은 죽음의 길일 수 있고 그를 살릴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사인일 수밖에 없었다. “살아 있는 게 더 고통이실 텐데 결단을 내리셔야 해요”

객관적으로 우리를 보았다면 누구나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 나조차도 예전에 ‘내 엄마의 인공호흡기를 떼라고 너무 안쓰러워 도저히 못 보겠다’고, 내 입으로 그랬었다. 그러고선 내 엄마 얘기만 나오면 가슴을 에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 몇 시간 아니 단 몇 분이라도 엄마를 더 볼 수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산소줄을 그대로 두라고 했을 텐데, 그때는 왜 그랬을까?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아버지 건강만 생각하세요” 내 아들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내 환자는 가련한 목숨을 이어가는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내 두 아들은 이전의 나처럼 어리석지 않아서 자랑스럽고 얼마나 고마웠는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일처럼 처리해 준 게 지금 생각해도 고맙고 고맙다.

그렇게 겉으로 멀쩡해 보이던 몸을 낙상으로 인해 목과 배에 구멍을 낸 채 맛도 잃고 숨도 기계로 쉬는 사람이 되어 24일 만에 인공호흡기를 달고 요양병원 중환자실로 복귀했다. 

나는 요양병원 중환자실까지 따라갔다. 추운 12월 크리스마스 무렵의 날들. 간이의자에 얇은 이불을 깔고 환자 침대 밑에서 자야 했던 두어 달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치열한 경험이었다.

자다가 몇 번이나 가래가 끓어 섹션기를 사용해서 뚫린 목에 줄을 넣고 가래를 뽑아냈다. 처음엔 도저히 그 일을 못하겠기에 간호사들에게 부탁했지만, 매번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의식이 형형한 내 환자는 인공호흡기만 달고 있을 뿐인데 날마다 죽어 나가는 환자가 있는 병동에서 밤새 내내 아파서 내지르는 신음과 치매환자들의 고함, 욕창에서 나오는 불쾌한 냄새를 참을 수 없던지라 주치의가 오면 일반 병동으로 바꿔 달라고 조르기 바빴다.

요양병원으로 복귀한 지 보름 만에 인공호흡기 없이도 혼자서 숨을 쉴 수 있으니 왜 안 그러겠는가?

그러나 가래는 뽑아야 하는데 일반 병동에서 가래를 뽑는 기계를 쓰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두어 달을 채우고 일반 병동으로 왔는데 도저히 그것만은 못할 것만 같았던 가래 뽑는 기계도 내가 사용할 수가 있게 되었다. 궁하면 다 통하는 법인가 보다.

코로나가 극심하고 내 환자는 연이은 사고로 인해 재활의 의지도 희망도 없어 보이니 만 3년의 병원 생활을 접고 집으로 왔다. 다행히 집에 와서 위류관도 뽑아 배에 구멍도 메꿔지고 입으로 온갖 음식을 먹어낸다. 기계로 가래를 뽑지 않고 입으로 뱉어낸다.

인공호흡기를 주입시키느라 목에 넣었던 관도 뽑아내고 그 구멍이 메워지면 말도 할 수 있을 거다. 지금도 다른 사람이 손으로 목을 눌러주면 말을 할 수 있다.

스스로 손을 쓰면 좋으련만 … 그러나 모든 유형의 것들은 모두 죽음 앞에서 헛된 것이다.

인간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진정한 웰다잉을 향해 가야 할 사람들이다

매일 자기 전에 우리는 함께 노래를 부른다. 성대의 훈련과 호흡의 건강을 위한 나름의 방법이다.

더러는 좋은 글귀도 읽어 준다. 최근 낭독한 좋은 글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오늘 글을 매듭짓고자 한다.

“카푸치노는 자신의 죽음을 묵상하는 커피이다. 카푸치노는 카푸친 수도회에서 유래한 말이다.
카푸친 수도회는 성 프란치스코가 설립한 작은 형제회의 독립된 분파 중 하나다. 수도사들은 서로 마주치면 ‘메멘토 모리’하고 인사를 나눈다. ‘당신의 죽음을 묵상하라’는 뜻이다. 카푸치노 기도문이다.
‘나의 본성은 자비심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과 자비를 전파하는 빛과 사랑의 존재이다.
내 안의 탐욕과 무지의 존재가 죽고 지혜와 자비의 꽃을 피우는 것이 영적인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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