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태 무
창선면 온리원 펜션
시인ㆍ수필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 2020년 11월 29일. 그날 국립경상대병원에서 너무나도 다급한 마음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나의 SNS에 올렸다.

부디 기도를 부탁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사랑하는 벗님들께 간곡한 부탁 말씀을 드립니다.
급하게 벗님들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제 환자가 심각한 고통속에 있습니다. 지난 화요일 휠체어에 앉아 기침을 하다가 앞으로 넘어져 얼굴을 다친 이후로 계속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요. 금요일 오후부터 열이 오르고 혈압이 높아져서 산소까지 달았는데 토요일 중환자실로 옮기라는군요. 기왕 병실을 옮긴다면 요양병원보다는 상급병원이 낫지 않겠냐는 의견들이 있어서 국립경상대병원으로 왔답니다. 응급실에서 CT 대여섯 장을 찍고 폐렴 증세가 조금 심하다는 호흡기 내과 의사의 의견이 있었어요. 코로나 시대라 격리병동으로 옮겼지요. 노인이라 걱정되었지만 폐렴 증세는 누구나 올 수 있으니 모든 염증은 치료하면 된다고 걱정 말라던 요양병원 박 원장의 말도 믿음이 갔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호흡이 곤란해지고 모든 수치가 위급한 상황이 되는 겁니다. 무언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시끄럽게 주절대더니 금방 산소를 가장 높은 단위로 넣었는데도 숨결이 급하게 쌕쌕거리다가 갑자기 조용한 거예요. 나는 산소가 많이 들어가니 숨을 잘 쉬나보다 했어요. 간호사가 ‘천ㅇㅇ환자분 !’ 하고 부르기 전까지는요. 정말 순식간에 이름을 불러도 대답도 않고 눈도 뜨지 않는 거여요. 무의식 상태… 결국 평소 원하지 않던 길-심폐소생술. 기타 인공호흡기 시술 등 생명연장을 위한 모든 의료행위-을 택해야 했어요. 지금 생명이 남아 있었으니까요. 
우리 가족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이 무조건 인공호흡기 시술에 동의했고 그에 따른 모든 의료행위에 동의했어요. 두 아들도 망설임 없이 동의한다고 해서 작은아들이 와서 사인도 했어요. 미동도 없이 꺼져버린 한 생명을 붙들고 의료진들은 급해서 중환자실로도 환자를 옮기지 못하고 격리실에서 시술을 했습니다. 밤 열 시까지 모든 조처를 끝내고 기다리는데 가슴이 바짝바짝 탑니다. 무수히 단 줄과 쌕쌕거리는 숨소리. 간간이 그 상태를 깨우는 알람 소리. 환자를 돌보느라 들락거리는 간호사들이 이 방 분위기를 만들어 주네요. 
아침 여섯 시. 목욕하던 시간에 수건을 적셔 얼굴이랑 팔과 다리 겨드랑이 가슴을 닦아 줍니다. 목욕시키면 ‘아이 시원해’하고 말하던 기억이 나 깨끗하게 닦아줬습니다. 그리고 요양병원 옥상에서 하던 대로 노래를 불러줬습니다. 약간 입이 달싹달싹 한 것 같았지만 아직 눈은 뜨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벗님들.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천ㅇㅇ를 위하여 잠깐의 화실기도라도 보태 주십시오. 기도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기적을 가져온다 합니다. 
언제나 저희를 위해 성원을 보내주시는 벗님들에게 이렇게 두 손 모아 간절한 부탁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소리울 드림 

 
SNS에 올린 글에 무수한 사랑의 댓글이 달리고 또 달렸다.

아주 예전에 다녀갔던 펜션의 단골 손님들도 댓글을 달아 기도를 보탠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기도는 효과가 있었다. 의식은 곧 돌아왔다. 그리고 주치의는 이제 음식을 먹어보자며 삼킴에 문제가 있으니 콧줄로 음식을 넣자고 했다. 이비인후과 의사가 오고 간호사가 오고 앞으로 넘어지며 코뼈가 약간 으스러진 것 때문에 콧줄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환자는 죽으라고 힘이 드는데 시도에 시도를 거듭하다 겨우 들어가서 두 번 ‘뉴케어’라는 환자용 영양죽을 줄에 넣어 코를 통해 넣었고, 음식이 잘 들어가는가 했다.

그런데 두 끼니를 넣었을 뿐인데 자꾸 괴로워하더니 또 숨이 멎는다. 다시 처음과 마찬가지로 동의서를 받고 이번에는 아예 목에 구멍을 내고 인공호흡기를 영구적으로 달아야겠다고 한다.

퇴원해도 인공호흡기를 가지고 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중환자실에서 수술해야만 한다는데 의식이 돌아온 내 환자는 중환자실로 가지 않고 저번처럼 격리실에서 내가 옆에 지킬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중환자실에서 며칠이 걸릴지 모르니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는데 내 환자는 그게 불안했던 거다.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 중환자실로 가고, 환자에게는 병원휴게실에서 밤낮으로 기다리겠다고 안심을 시켰다. 남해 우리집까지 올 수가 없어서 병원 가까운 사촌오빠댁에서 며칠만 신세를 지겠다고 했다. 

그런 내게 중환자실 담당 간호사는 몇 년이 될 수도 있고 몇 달이 될 수도 있다고 사인을 받으면서 겁부터 주었다. 그런데 사흘이 되자 수술도 잘 끝났고 목에 구멍을 뚫었다, 또 중환자실에서는 이비인후과 집도의가 산소 없이 혼자서 숨도 잘 쉰다며 지금으로선 인공호흡기가 필요 없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행히 일반 병동으로 왔는데 다시 이번에는 소화기 내과에서 배에 구멍을 내야 한다고 한다.

콧줄로 음식이 잘못 들어가서 다시 목에 구멍 내는 불상사가 일어났으니까 아예 위에다 구멍을 내어 위류관으로 음식을 넣어야 한다는 거다. 음식이 기도로 넘어가면 백발백중 폐렴으로 죽게 된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렇다고 팔십이 넘은 환자를 목에 구멍 내는 수술 한 지 사흘도 안 지났는데 또다시 배에 구멍을 내야 한다니!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왔지만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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