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곧고 정직해 하는 일이 정의롭고 정의로운 일만 하는 사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스스로 육체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자신의 임무를 다 하는 성실하고 겸손한 사람이다’ 27년 가까운 세월을 지방고용원으로 보내고 지난달 30일 정년퇴임을 맞은 미조초등학교 이재만(59·미조 조도) 주사를 주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재만 주사에게 있어 가장 절실했던 것은 아마 평범한 삶.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은 없을 것이다.

3살 때 갑자기 찾아온 왼쪽 다리 소아마비(지체부자유 5급)로 인해 견디기 힘든 시간들도 많았다.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일이다. 집에서 미남분교까지 다니는 길이 45도 가량 되는 오르막길이라 다리가 불편한 이 주사에게는 여간 힘든 길이 아니었다.

 비가 오는 어느 날 한 친구가 ‘비온다’‘귀신 나온다’라며 말하면서 뛰어가는 친구를 본 이 주사는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그 다음해 상주초등학교로 전학을 갔고 상주초에서 졸업했다.

초등학교 졸업이 그의 최종학력이다. 60년대 보릿고개의 힘든 시절을 보냈던 그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학력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사람이다.

미조우체국 청부 집배원으로 일하던 그에게 1979년 미남초등학교를 관리하던 사람의 정년퇴임으로 그 자리를 이어 받은 것이 그의 주사로서의 생활 첫 시작이다. 학교주변 정화, 책상·걸상 보수, 화단정리에서부터 옛날 철필로 문서를 만들 때는 선생님들의 공문서 만드는데도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는 등 다재다능한 재주꾼이다.

또 한자에 대한 애정은 유별나다. 배움에 대한 열의가 많았던 이 주사는 독학으로 한자를 배웠다. 타고난 명필에다 한자공부에 많은 노력을 한 결과 장수 이씨 미조·상주 족보를 만드는데 수단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집안에서는 퇴임을 하는 그가 이 분야에서 많은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고 퇴임을 반긴다고.

퇴임을 하는 그가 여태껏 살면서 아쉬워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첫 발령지인 미남분교가 폐교가 된 것, 다른 하나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아는 한자를 가르쳐주고 떠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하고 퇴임한 것이다.

“아쉽지...첫 발령지인데...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시작했고 학교가 작아서 직원들이 그냥 가족이었지. 내가 낚시를 잘해 직원들 사이에서 상당히 인기가 좋았어. 그 때를 생각하면 다시 돌아가고 싶어”라며 웃음을 지어 보인다. 한 달에 1번씩은 폐교된 미남분교를 점검하는 일을 꼭 챙긴다.

이재만 주사는 장애로 인해 많은 것들이 힘들었는데 어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 아무런 사고 없이 공직생활을 마감할 수 있어 자신이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비록 기능직이지만 잘 선택했고 특별히 잘한 것은 없어도 후회 없이 성실히 일했기 때문에 내 인생 최고의 직업이었다”고 말한다.

퇴임 후 앞으로의 남은 여생은 자신처럼 힘들게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과 입은 옷에 이불도 없는 상황의 그에게 시집와 여태껏 아무 불평 없이 두 아들을 키우며 힘든 내색 없이 잘 살아준 아내 황혜숙(50)씨를 위해 남을 인생을 살고 싶단다.

“장애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런 삶인지 그리고 이 역경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힘이 드는지 내가 삶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안다.

남들보다 반밖에 일을 못하는데도 힘들어하는 장애인을 위한 활동을 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어 보이는 이재만주사의 얼굴에서 힘찬 내일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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