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지나 배운 시가 나의 삶을 일깨웠습니다
가을 지나 배운 시가 나의 삶을 일깨웠습니다
  • 임종욱 인턴기자
  • 승인 2021.11.05 16: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1살의 청년 시인 김춘선 님을 만나다
집 마당에 있는 꽃밭에서 포즈를 취한 김춘선 시인

기자도 젊은 시절 시를 쓰고 싶었다. 대학 때 A4지를 제본한 노트를 들고 영감(?)이 떠오를 때면 하얀 종이 위에 뭔가를 끼적거렸다. 그때 40여 편의 시를 썼지만, 기자는 결국 시인은 되지 못했다. 빙빙 돌고 돌아 마흔을 넘겨 소설가로 등단했다.

늘 되고 싶었던 시인, 지금도 쓰고 싶은 시. 마음만 앞설 뿐 산문의 글로만 풀어지는 기자의 글에는 뮤즈가 없다.

그런데 팔순을 앞둔 나이에 처음으로 붓을 들어 시를 배웠고, 3년 만인 81살에 시집까지 낸 ‘젊은’ 시인이 있다. 남해도서관 ‘회복하는 시 쓰기’ 교실에서 시에 입문해 따뜻한 삶을 노래하는 어엿한 시인이 되었다. 시작 노트를 들고 지금도 아름답고도 처절한 시구를 고르는 김춘선 시인. 그 분의 삶과 시에 대해 들어보려고 길을 나섰다.

김춘선 시인이 사는 동네는 서면 중현마을이다. 원래부터 큰 마을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주민 20여 분이 사는 소박한 마을이다. 마을 안에 당곡 정희보 선생을 모시는 운곡사(雲谷祠)가 있어 귀에 익다.

김춘선 시인은 체구는 작아도 단아하면서 심지가 굳은 인상을 주는 분이었다. 슬하의 자제분들은 모두 대처로 나가 살고, 바깥어른도 3년 전 세상을 떠나 지금은 넓은 집에서 혼자 지내고 계시다.

차에서 내리는 기자를 정류장까지 나와 반갑게 맞아 주셨다.

 

가난했지만, 당당하게 살아왔지요
자리에 앉으니 커피를 내오셨다. 먼저 살아온 내력과 가족들에 대해 물었다.

김춘선 시인은 1942년 서면 서상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리 부유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단란한 집안이었다. 아버지는 일본을 오가면서 작은 사업을 하셨는데, 어느 날 사고를 당해 돌아가시면서 집안이 어려워졌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할아버님이 대신 채워 주셨다. 젊어 홀로 된 어머니는 자식들 뒷바라지로 평생을 사셨다. 배움이 넉넉하지는 않아도 초등학교를 마치고 공민중학교(지금의 성명초등학교 자리)까지 다녔는데, 드물게 남녀공학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학교가 폐교되는 바람에 학업은 거기서 끝났다.

배움은 끝났지만 공부까지 등지지는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도 주부대학이나 노인대학, 심지어 컴퓨터 교실까지 나가 지식에의 열망을 채웠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인 21살 때 중촌마을로 시집을 왔다. 시댁은 몹시 가난해 도산마을과 회룡마을을 다니며 더부살이를 했는데, 여기서 큰딸과 작은딸을 낳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힘겹기만 한 시절이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남편은 퍽 완고하지만 우직한 분이셨다. 가난이 지겨워 학교 ‘전달부’가 되자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그래서 지금 집을 어렵게 장만했다. 살만해지자 남편은 그만 중풍에 걸렸다. 30여 년 자리보전을 하다가 요양원에 들어가 지낸 지 세 해 만에 세상을 등졌다.

2남2녀를 두었는데, 두 딸을 낳은 뒤 아들 둘이 태어났다. 잘 돌봐주지도 못했는데 다들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런 일꾼으로 성장했다. 큰아들은 중앙대를 졸업하고 학교에 취직했다. 둘째딸은 형편이 어려워져 대학을 보내지 못하자 자력으로 공부해 공무원이 되어 미안하면서도 대견하단다. 다른 자녀들도 KT 차장 등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가족들과 함께 오붓한 한 자리
가족들과 함께 오붓한 한 자리

막막한 시작에서 고마운 성취까지
시 창작 교실에 나가게 된 동기를 여쭈었다. 먼저 남해신협에서 연 수필 교실에 나갔는데, 같이 배우던 이정구 님(이번에 함께 시집을 냈다)이 시도 배워보자고 해서 얼결에 끌려 나갔단다.

가 보니 학생들이 다들 젊었다. 외톨이가 된 기분이라 그만둘까 했지만, 송인필 시인 등 여러분들이 격려해 주어 다부지게 마음을 고쳐먹었다. 동생이 아동작가인 김태두인데, 파킨슨병에 걸려 힘겨워 하면서도 글에 대한 집념을 곧추세우는 모습도 힘이 되었다고 한다.

뭘 써야 할지 몰라 답답해 하다가 예전부터 써온 일기장을 들척였다고 한다. 10권이 넘는 일기장을 기자에게 보여주었는데, 지금도 하루의 동정을 잊지 않고 쓴다고 했다. 거기에 담긴 사연들을 정리하기도 하고, 사소한 일에도 생각의 결을 더해 원고지를 채워 나갔다.

시를 쓸 때면 잡념은 사라지고 집중이 되어 보람을 느꼈다. 세상사 희로애락을 담으려 했고,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고 앞날의 희망을 꾸리면서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려고 했다.

김춘선 시인의 첫 시집 『꽃구경 간다』
김춘선 시인의 첫 시집 『꽃구경 간다』

기자가 읽어본 시집의 시편들은 시인의 세상에 대한 관심과 가족들에 대한 고마움이 녹아 있어 감동을 일깨웠다. 시가 참 좋다고 하자 “다 선생님과 동료들이 도와준 덕분”이라며 수줍게 양보했다.

시는 계속 쓰실 거냐고 물었다.

요즘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 다짐하기는 어렵단다. 얼마 전에는 유방암 수술을 받았고, 만성신부전증이 머무는 데다 다리도 불편해 거동하기가 쉽지 않으니, 혹시 시 교실 등교는 거르더라도 시 쓰기는 이어가고 싶다 했다.

혼자 계시면 무섭지 않냐 걱정을 더하니, “하나님이 늘 옆에 계시는데 두려울 게 뭐냐”고 웃었다. 10여 년 전부터 남해읍교회에 나가는데, 큰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텃밭을 가꾸고, 꽃밭도 손보면서 나에게 주어진 삶을 겸허하게 거둬들이며 북돋겠다고 다짐하셨다. 가족들이 늘 건강하기를 소원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가라는 걸 사양하고 나오자 김춘선 시인은 과일을 싸 주었다. 흰 봉지에 담긴 과일 향만큼이나 정성에서 우러난 시향(詩香)이 그윽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