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 누에머리 흔들며, 전동같은 앞다리, 동아같은 뒷발로 양 귀 찌어지고, 쇠낫같은 발톱으로 잔디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 주홍 입 쩍 벌리고 ‘워리렁’ 허는 소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난 듯, 자래 정신없이 목을 움추리고 가만이 엎졌것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생이 내려온다” 

한 번도 못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은 사람은 없다는, ‘한국관광공사’ 홍보 영상인 ‘한국의 리듬을 느끼세요(Feel the Rhythm of Korea)’에 쓰인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의 한 소절이다. 

별주부전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한국의 흥을 제대로 보였다는 이 노래를 배경으로, 남해문화원(원장 하미자) ‘머라쿠네tv’에서 ‘남해문화원 버전 범 내려온다’를 영상화했더니 현재 반응이 꽤 뜨겁다. 

6일 밤 9시에 업로드한 이 영상은 10일 오전 기준으로 조회 수가 벌써 4500회에 달했다. 영상을 본 다수는 “코로나로 인해 전국이 움츠러진 이때, 이걸 보니 힘이 난다”, “웃다 보면 어느새 끝이 나 다시 클릭하게 된다. 감동과 재미가 동시에 담겨 있다”, “남해의 겨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노란 유자와 푸른 시금치를 같이 만날 수 있어 고향 생각이 더 물씬 난다”, “남해를 이렇게 정겨운 방식으로 홍보해주셔서 고맙다” 등 다양한 감상평과 응원을 댓글로 보탰다.

영상을 기획한 남해문화원 김미숙 사무국장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이날치 밴드 음악을 바탕으로 만든 광고영상을 보는 순간 이건 무조건 해야겠다 싶었다. 남해편을 찍어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우리 방식으로 남해편으로 패러디해보는 것도 분명 재미나고 의미 있는 작업이겠다 싶었다”며 “남해에 가장 많이 사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네 어머니들, 즉 할머니들이 아닐까. 이분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경관 중심의 영상보다 남해를 상징하는 유자와 시금치를 더 중점에 두고 만들어 보자”며 영상의 출발을 설명했다.
 
좋은 취지와 기획력 인정받아 음원 사용도 흔쾌히 허락받아
가장 핫하다는 노래이기에 저작권 문제와 함께 음원 사용료도 문제가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김미숙 국장은 한국관광공사경남지사 박철범 지사장에게 직접 자문을 구했다. 김미숙 국장은 “박철범 경남지사장께서 자문도 아끼지 않으셨고, 연락처도 알려주셔서 이날치 밴드 음향감독에게 직접 연락하고, 우리가 하려는 홍보 영상에 대한 취지와 기획 등을 장문의 메일로 알렸더니 흔쾌히 무료 사용을 허락해주셨다. 가장 큰 난관을 넘자 일사천리로 착착 진행됐다”고 말했다. 하미자 문화원장은 “남해의 자연경관 우수성이야 워낙 기본 중 기본인거라 시금치와 유자를 제대로 알려보자 싶었다”며 “이젠 카메라 앞에서 베테랑이 된 ‘머라쿠네tv 출연진’들과 두 달 전부터 영상에 나오는 개다리춤을 맹연습을 해 온 ‘문화원 라인댄스 회원’들이 힘을 모았더니 이런 작품이 나왔다”고 말했다. 

마음 맞춰 신나게 촬영…100만원 안되는 저예산으로 이룬 기적
영상에 등장하는 공간적 배경은 ‘남해대교, 이순신 거북선, 담벼락이 특히 예쁜 석평마을 안길, 바람흔적미술관과 시금치들판’ 총 5곳이며, 이 모든 촬영은 하루 만에 이뤄졌다. 특히나 놀라운 건 총예산 1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저예산으로 이런 홍보 영상을 만든 것. 

김미숙 사무국장은 “정말 남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이자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해내는 열정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며 “이번 일을 겪으면서 하나 배운 건 사람은 결코 혼자선 갈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현장에서 같이 부대끼며 촬영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동고동락을 나눈 새남해 김종수 유튜버와 박기석 유튜버도 고맙고, 자칫 놓치는 부분을 묵묵히 채워주며 이번 영상에서 눈에 확 띄는 색동의상을 뚝딱 제작해준 교육부장도 고맙고, 무엇보다도 개다리춤을 두고 남 부끄러워서 이런 춤 어찌 추겠냐고 우려를 표하던 라인댄스 팀 할매들의 열정 있는 모습이 정말 눈물나게 고마웠다. 하루 온종일 춤추고도 예산이 없어 점심 국밥 한 그릇밖에 못 사드렸는데 외려 신명났다며 우리를 위로해 주셨다”고 한다.

남해문화원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우리는 세련되지 못하다. 어쭙잖게 프로를 흉내내기 보다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인간적인 면모를 솔직하게 공유하며 한바탕 같이 웃으며 남해살이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남해 논두렁에 범 내려온다’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 코로나19가 뭐라 하든 간에 남해사람들이 보여준 진솔한 지금이 보여주는 찐한 감동과 위로, 그것이 바로 우리 남해인의 흥(興)이며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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