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부터 부는 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한다. 일요일 비 온 뒤 찬 바람이 시작되니 텃밭은 비어 가고 낙엽만 쌓여 간다. 수확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텃밭생활이 막바지에 다다르며 비우는 계절이 다가오는 것이다. 가을이 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어지러운 세상에서도 자연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친 우리의 일상도 하루속히 원래 자리로 돌아오면 좋겠다.

철새가 돌아왔다.
강진만 여기 저기 이달 들어 철새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어제와 오늘, 하루 하루 보는 숫자가 확연히 달리 보일 정도로 매일 늘어나는 느낌이다. 
특히, 물이 가득찬 입현 매립지 호수에 백마리 이상의 철새들이 갈대사이로 한꺼번에 날아 오를 때와 내려 앉을 때 이곳을 관찰해 보면, 이런 장관을 우리 남해가 아니면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새삼 자연의 보고 남해에 살고 있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고 또 찾아가게 된다.

계절 따라 이동하지 않고 그저 한곳에 1년 내내 머무는 새를 ‘텃새’라 한다. 까치, 갈매기 같은 텃새는 철새에게 조폭처럼 텃세를 부린다고 한다. 사람 사는 세상 어딘들 텃세가 없으랴만, 그래서 사람들이 텃새보다 철새를 더 좋아하는가 보다. 새소리도 철새가 아름답다. 텃새들은 참새, 까치, 까마귀, 꿩처럼 짹짹 꽉꽉 꿩꿩거리면서 단음밖에 못 내지만 철새들은 꾀꼬리, 종달새, 제비, 뻐꾸기처럼 오페라가수들이다. 텃새들은 고집이 있어 사람을 안 따르지만 철새들은 새끼에게 먹이를 주면 어미로 알고 잘 따른다고 한다.

철새는 정해진 계절에 번식지와 월동지로 이동하는 새를 말한다.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고,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먹이가 풍부하고 온도가 알맞은 서식지가 필요하다. 철새마다 이동의 횟수, 방향, 거리는 다르다. 빛이나 바람을 이용하는 ‘이동’은 생명을 지속시키는 지혜이고 철새는 기대며 살아가되 나그네, 유목민처럼 떠돈다.
철새에도 종류가 있다고 한다. 제비, 뻐꾸기와 같은 것을 ‘여름 철새’라 하고 두루미, 가창오리와 같은 것을 ‘겨울 철새’라 한다. 

“여기에 머물다 떠나간 백조처럼/ 인간은 땅에 머물러 있다가/ 가장 슬픈 소리를 세상에 들려주지? 가장 처량한 소리를”, ‘철새는 날아가고’ 사이먼과 카펑클의 노래와 “먹구름 울고 찬 서리 친다 해도/ 바람 따라 제비 돌아오는 날” 이라는 가수 조영남의 노래, 여름 철새 ‘제비’에는 그리움이 배어 있다. 이처럼 그리움이 없는 텃새는 노래로 불리어지지 않지만 계절마다 찾아오는 철새는 우리 인간사에서 호출되어 애증·애환을 담아 노래로 불리워졌다. 

철새는 오고 가야 할 때를 잘 알고 있다. 박목월이 ‘난’ 이란 시에서 “이쯤에서 그만 하직하고 싶다. 여유 있는 하직은 얼마나 아름다우랴”라고 했듯, 뒤도 안 보고 돌아갈 줄 알고 있는 지혜를 철새는 터득하고 있다. 갈 때를 알고 떠나가는 단호함, 용기가 멋스럽다. 그에 비해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철새 정치인’들로 인해 어찌보면 아무런 관련없는 철새들의 명예를 훼손해 온 것 같다. 
철새들이 보는 정치인들은 얼마나 한심스러울까. 정체성도 없이 본인의 ‘유리함’만을 목표로 하는 정치인들보다, 철새는 ‘생명의 자연’에 충실한 것이다.
이 가을과 갈대의 꽃차례가 지기전에 선소의 입현 매립지에서 출발하여 심천, 이어, 도마 매립지의 갈대와 바닷가의 철새들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느낌은 우리 남해가 아니면 어디에서 보고 느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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